항목 ID | GC0430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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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 |
이칭/별칭 | 역원(驛院),원우(院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정학수 |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주요 도로에 세워져 국가가 경영한 여관.
[개설]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요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의 일종이다. 대개 역(驛)과 관련되어 역의 중간 지점에 설치되므로 보통 역원(驛院)이라 하였다. 공무 여행자의 교통 숙식 시설 중에는 관(館)도 있었는데, 객관(客館) 혹은 객사(客舍)로 불린 관은 군현의 읍치[중심지]에 있다는 점에서 원과 구별된다. 원의 건물은 원우(院宇)라 하였다.
[변천 및 운영]
원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때부터 관·역과 함께 많이 설치되었고 특히 자선 사업의 일환으로 사찰에서 많이 운영하였다. 이러한 원들은 주로 교통상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교역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국가에서는 원의 운영을 위해 원위전(院位田)을 지급하면서 관할 군현이 원을 관리하게 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원이 부실해지자 조선 시대 들어 1392년(태조 1) 9월 배극렴(裵克廉)·조준(趙浚)의 상소로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원이 수리·건설되었다. 조선 때의 원우는 고려 때의 절 또는 선원(禪院)을 원으로 삼거나 개인 소유의 주택 또는 누정(樓亭)을 개조한 것이 많았고, 관아 또는 개인이 주관해 원우를 신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1445년(세종 27)에는 원을 정비·보완하기 위해 원 부근 주민 중 유능한 사람에게 원주(院主)의 책임을 맡기고 잡역을 면제하는 한편 원주전(院主田)을 지급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원주에게 지급된 원주전은 대로(大路)인 경우 1결(結) 35부(負), 중로(中路) 90부, 소로(小路) 45부였다.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한양의 경우 한성부가, 지방은 관찰사가 담당하였다.
공무 여행자는 국가에서 초료(草料)를 발급받아 하인과 말의 숙식 등을 원에서 공급받았다. 원은 교통 사정이 원활하지 못한 당시에 공무 여행자뿐 아니라 때때로 상인 등 일반 행인에게도 휴식 및 투숙처로 제공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기로연(耆老宴)이나 진제장(賑濟場)과 같은 행사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원의 사용자가 제한되어 있었던 까닭에 점차 쇠락하여 가자 공무 여행자들은 주로 지방 관아의 객사인 관(館)이나 역을 이용하게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겪고 난 조선 후기에는 그 폐해가 많아 원이 담당하던 역할은 참점(站店)이나 주막·주점이 대신하게 되고 점차 그 모습을 감추어, 원은 서울 서대문 밖의 홍제원(弘濟院)이나 남대문 밖의 이태원(梨泰院) 등과 같이 대다수 지역에서 원이란 글자가 붙은 지명만을 남겨 전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양주의 원]
16세기 전반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전국에 원이 1,310개가 있다고 전하는데, 8도 가운데 경상도가 468곳으로 가장 많고 함경도가 37곳으로 가장 적으며 하삼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117곳이, 양주목에는 6곳이 소개되어 있는데, 광제원(廣濟院)은 양주목 치소의 남쪽 14㎞[현재 의정부시 녹양동] 지점에, 광인원(廣仁院)은 치소 남쪽 12㎞[현재 의정부시 녹양동] 지점에, 상지원(相知院)은 치소 서쪽 18㎞[현재 위치 미상] 지점에, 도공원(陶孔院)은 치소 동쪽 29.6㎞[현재 위치 미상] 지점에, 덕해원(德海院)은 서울에서 12㎞ 거리인 도봉산 아래 해촌(海村) 언덕[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번지]에, 도제원(道濟院)은 토원(兎院)[퇴계원]이라고도 하며 풍양현 남쪽 6㎞[현재 남양주시 퇴계원면 퇴계원리]에 있다고 하였다.
19세기 전반기에 만들어진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에는 위의 6곳 외에 치소 동쪽 28㎞[현재 남양주시 삼패동] 지점에 있다고 하는 평구원(平丘院)이 하나 더 첨가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 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하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면 조선 시대 양주에는 전기에 6곳, 후기에 1곳의 원이 있었던 셈이다.
[관련 기록]
1.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 양주목 역원
광제원(廣濟院) : 주 남쪽 35리 지점에 있다. 광인원(廣仁院) : 주 남쪽 30리 지점에 있다. 상지원(相知院) : 주 서쪽 45리 지점에 있다. 도공원(陶孔院) : 주 동쪽 74리 지점에 있다. 덕해원(德海院) : 도봉산 밑에 해촌(海村)이라는 언덕이 있고, 덕해(德海)라는 원이 있는데, 서울에서 30리 거리이다. 도제원(道濟院) : 풍양현 남쪽 15리쯤에 있는데, 토원(兎院)이라 하기도 한다.
2. 『양주군읍지』 역원
광제원(廣濟院), 광인원(廣仁院), 상지원(相知院), 도공원(陶孔院), 덕해원(德海院), 도제원(道濟院) : 이상의 6원은 지지(地誌)에 실려 있으나 지금은 폐하여졌다. 평구원(平丘院) : 주 동쪽 70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