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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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國華 |
이칭/별칭 | 금산(錦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오국화 경상도 안렴사로 의성 지역 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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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18년 - 오국화 우곡 서원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898년 - 금운정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18년 - 고려 징사 금산 오선생 유허비 건립 |
묘소|단소 | 오국화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업 2리 산167 우곡서원 뒤편 |
사당|배향지 | 우곡 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업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해주 |
대표 관직 | 경상도안렴사 |
[정의]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금산(錦山). 고려 말의 충신으로 해주 오씨 의성 입향조이다.
[활동 사항]
오국화(吳國華)는 생몰년 미상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예의 전서(禮義 典書) 등을 거쳤다. 1392년(공양왕 4) 경상도 안렴사(慶尙道 安廉使)가 되어 의성 지역을 순시하였는데, 그때 마침 정몽주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선죽교(善竹橋)에서 격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며칠 동안 통곡하다가 직인을 땅에 묻고 의성에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몇 번이나 불렀으나 그때마다 귀를 더럽혔다 하여 흐르는 냇물에 귀를 씻었는데, 사람들은 그 내를 세이천(洗耳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오국화가 남긴 글들을 모아 1935년 후손 오학수(吳鶴洙)가 『錦山實記』로 편집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업리 우곡 서원(愚谷 書院) 뒤편에 있다.
[상훈과 추모]
우곡 서원은 1818년(순조 18) 오국화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년)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1918년 우곡단으로 복원되었다가 1983년 우곡서원으로 격상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세천정(洗川亭)은 오국화의 절의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이 지은 정자이다. 세천정 뒤편에 1918년에 세운 고려징사 금산 오선생 유허비(高麗徵士 錦山 吳先生 遺墟碑)가 있다. 또한 의성읍 도동리의 금운정(錦雲亭)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1898년에 건립한 정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