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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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詠歸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일직점곡로 1197[서변리 319]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501년 - 영귀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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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8년 - 영귀정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8년 - 영귀정 중수(1868)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1년 3월 25일 - 영귀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귀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 영귀정 중수(1997) |
현 소재지 | 영귀정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319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기와 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문중 |
관리자 |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개설]
영귀정(詠歸亭)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광수(金光粹)[1468~1563]가 세운 정자이다. 김광수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이며, 유성룡(柳成龍)의 외조부이다. 1501년(연산군 7) 32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혼란한 정국을 뒤로하고 낙향하여 영귀모암(詠歸茅菴)을 세우고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위치]
영귀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길 592-7[서변리 319]에 있다. 사촌 삼거리에서 일직 점곡로 방향으로 780m가량 직진하면 일직 점곡로와 명고길이 교차하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우회전한 후 명고길을 따라 500m가량 이동하면 미천을 가로지르는 점곡 제2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좌측에 ‘영귀정’ 안내판과 함께 좁은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을 따라 60m 올라가면 영귀정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영귀정의 역사는 「영귀정 중수기(詠歸亭 重修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문에 의하면 김광수는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여파로 정치의 혼란이 거듭되자 성균관에서 함께 수학하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낙향하였다. 이때 영귀정을 세우고 소영(嘯詠)과 강설(講說)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정자의 이름인 ‘영귀(詠歸)’는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編)에 나오는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온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영귀정은 1808년(순조 8) 후손 김종록(金宗祿) 등의 주도로 이전보다 확장되어 중건되었다. 이 때 동재와 서재를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재는 ‘학치(學致)’, 서재는 ‘취정(就正)’이라 하였다. 이는 『논어(論語)』 자장편(子張編)의 “군자는 학문을 함으로써 그 도를 다한다[君子學以致其道].”라는 구절과 학이편(學而編)의 “도가 있어 바르게 나아간다면 가히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라는 구절에서 취한 것이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도담사(道潭祠)가 훼철되자 그 체목(體木)을 옮겨 영귀정을 중수하였다. 이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1991년 3월 25일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3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의성군이 재차 중수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영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대문 안과 밖에 돌계단을 두어 이를 통해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좌우측은 온돌방이며, 어간은 2칸의 대청방으로 하였다. 정면에는 반 칸의 툇마루를 달고 평난간으로 장식하였다.
[현황]
영귀정은 2012년 현재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영귀정(詠歸亭)’ 현판을 비롯하여 ‘동재(東齋)’, ‘서재(西齋)’, ‘송은 선생 서회집구(松隱先生書懷集句)’, ‘영귀정 중건소지’, ‘영귀정 중건기’ 등의 현액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영귀정은 사촌(沙村) 앞 냇가에 김광수가 은거하여 강학하던 곳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판으로 장식한 전형적인 정자 건축물로서 조선 시대 건축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