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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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時晉 |
이칭/별칭 | 자승(子昇),구음(龜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73년 - 양시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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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양시진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양시진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15년 11월 - 양시진 사망 |
출생지 | 양시진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
묘소|단소 | 양시진 묘소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남원(南原) |
대표 관직|경력 | 지평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승(子昇), 호는 구음(龜陰). 증조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 할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낸 양홍(楊洪), 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다. 외조부는 최영(崔穎)이고, 처는 김대립(金大立)의 딸 강진 김씨이다.
남원 양씨는 고려 말 대제학을 지낸 양이시(楊以時)의 며느리이자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인 숙인 이씨(淑人李氏)가 개경에서 남원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전란을 피해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양시진(楊時晉)[1573~1615]은 1573년(선조 6) 순창군 적성면 구남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광해군 때에 지평(持平)·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지평으로 있을 때 이이첨(李爾瞻), 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가 능창군 전(綾昌君佺)을 왕으로 추대하는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소명국(蘇明國)의 고변(告變)[반역 행위를 고발함]이 있었다. 이에 연루되어 장형(杖刑)을 받고,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 가던 도중 1615년(광해 7) 11월 18일 철령 너머 덕산역에서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순창군 적성면 내적성에 양위분이 있다. 처 강진 김씨는 양시진 사후 삼년상을 극진히 치르고, 남편을 복관시킨 인조가 죽자 마치 남편 상을 치르듯하여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상훈과 추모]
인조반정 후 누명임이 밝혀져 관직이 복구되고 이조 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