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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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千鎰 |
이칭/별칭 | 사중(士重),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37년 - 김천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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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3년 - 김천일 군기사 주부, 용안 현감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82년 - 김천일 순창 군수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김천일 의병 봉기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김천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03년 - 김천일 좌찬성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618년 - 김천일 영의정에 가증 |
출생지 | 김천일 출생지 - 전라남도 나주 |
사당|배향지 | 정렬사 - 전라남도 나주시 대호동 646 |
사당|배향지 | 창렬사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남성동 213-1] |
사당|배향지 |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
사당|배향지 | 남고 서원 -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 |
사당|배향지 | 학정 서원 -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
성격 | 문관|의병장 |
성별 | 남 |
본관 | 언양 |
대표 관직|경력 | 장례원 판결사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할아버지는 주부 김윤손(金潤孫)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며, 어머니는 양성 이씨(陽城李氏) 부위(副尉) 이감(李瑊)의 딸이다. 아들은 김상건(金象乾)이다.
[활동 사항]
김천일(金千鎰)[1537~1593]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73년(선조 6)에 학행으로 발탁되어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 용안 현감(龍安縣監)과 강원도·경상도의 도사를 역임하였다. 사헌부 지평 때 올린 상소 때문에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1578년에 임실 현감을 지낸 뒤 담양 부사, 한성부 서윤, 수원 부사, 순창 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고경명(高敬命)·박광옥(朴光玉)·최경회(崔慶會)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고, 5월 6일 의병을 일으켜 담양에서 회합하였다. 나주에서 송제민(宋濟民)·양산숙(梁山璹)·박환(朴懽)·임권(林權)·이광주(李光宙)·서정후(徐廷厚) 등과 함께 합류하여 평안도를 향하다 금령 전투(金嶺戰鬪)에서 적 15명을 죽였다. 8월에 전라 병사 최원(崔遠)의 관군과 합류하여 강화도로 진을 옮겼다. 이 공으로 장례원 판결사(掌禮院判決事)가 되고 창의사(倡義使)라는 군호(軍號)를 받았다. 강화도 해변가의 적군을 공격하고, 양천·김포 등지의 왜군을 패주시켰다. 양화도 전투(楊花渡戰鬪), 사현 전투(沙峴戰鬪), 권율(權慄)의 행주산성 전투 등에 참전하였다.
왜군이 남으로 후퇴하자 1593년(선조 26) 6월에 왜군을 추격하여 절도사 최경회 등과 함께 진주성으로 입성하였다. 명나라와 왜국 간에 조약을 맺으려 할 때 이를 반대하였다. 6월 21일 왜군이 2차로 진주성을 공격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 성이 함락되었다. 이에 아들 김상건(金象乾)과 함께 촉석루에서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송천집(松川集)』, 『건재 유집』이 있다.
[상훈과 추모]
1603년(선조 36) 좌찬성에 추증되고, 이어 1618년(광해군 10)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나주의 정렬사(旌烈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 순창의 화산 서원(花山書院), 태인[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의 남고 서원(南皐書院), 임실의 학정 서원(鶴亭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