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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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公濟 |
이칭/별칭 | 희인(希仁),이계(伊溪),정민(貞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469년 - 신공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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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95년 - 신공제 과거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06년 - 신공제 사간원 헌납, 장령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16년 - 신공제 창원 부사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17년 - 신공제 이조 판서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28년 - 신공제 좌참찬, 호조 판서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36년 - 신공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36년 - 신공제 사망 |
거주|이주지 | 이계 주인 - 전라북도 순창군 |
사당|배향지 |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고령 |
대표 관직|경력 | 좌참찬 |
[정의]
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문관.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희인(希仁), 호는 이계(伊溪). 증조할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신장(申檣)이고,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내고 순창에 귀래정을 건립한 신말주(申末舟)이다.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신홍(申洪)이며, 어머니는 변균(卞鈞)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공제(申公濟)[1469~1536]는 1486년(성종 17) 진사가 되었고 1495년(연산군 1) 증광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글씨를 잘 써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된 후에 예문관 검열, 승문원 주서를 거쳐 옥당(玉堂)에 들어갔다. 병조 좌랑, 능성 현령을 하다가 1503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순창에서 여막살이를 하였다. 1516년(중종 11) 창원 부사로 재직하면서 청렴 근면한 수령(守令)으로 표창을 받았다. 1517년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과거 시험의 전형을 맡아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게 관리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1528년 좌참찬(左參贊)이 되었고, 겨울에 호조 판서 겸 세자좌부빈객(戶曹判書兼世子左副賓客)이 되었다. 만년에 순창에 거주하면서 정자를 짓고 스스로 ‘이계 주인(伊溪主人)’이라 하였는데, 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1536년(중종 31)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신라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명가 필적을 수록한 『해동 명적(海東名蹟)』을 간행하였다. 글씨는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글씨로는 광주 안 참판 침 묘비(廣州安參判琛墓碑)와 남원 윤 판서 효손 묘비(南原尹判書孝孫墓碑)가 있다.
[상훈과 추모]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순창의 화산 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