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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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溪里-塔 |
이칭/별칭 | 돌가마,각시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로 101-2[남계리 239-3]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양은용 |
현 소재지 | 남계리 가마탑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로 101-2[남계리 2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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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석탑 |
재질 | 돌 |
크기(높이) | 19㎝[하대석]|22㎝[하대 중석]|16㎝[하대 갑석]]|54㎝[상대 중석]|11㎝[상대 갑석]|35㎝[옥개석] |
소유자 | 순창군 |
관리자 | 순창군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동은 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개설]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동은 마을의 주민들은 남계리 가마탑을 돌가마 혹은 각시탑이라고 부르며, 남계리 가마탑이 있는 지역을 각시 숲이라고 부른다. 남계리 가마탑 바로 옆에는 탑이 세워지게 된 애잔한 사연의 역사가 비문에 잘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으로 비문을 뽑아 근처 수로에 처박아 버렸다.
1989년 남계리를 조사하였을 때에는 ‘연길하(年吉下)’라고 새겨진 명문 기와를 습득하였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이 지대를 남계리 절터로 보고하고 있으나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다. 이 지역 일대에 민가가 밀집해 있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매우 힘들다.
[건립 경위]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남도 곡성 땅에 지체 높은 양반이 살았는데 이 집에 혼기가 된 아름다운 규수가 있었다. 그런데 순창 고을의 명문인 조 진사댁과 혼담이 이루어져 하필이면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어느 날 곱게 단장한 꽃가마를 타고 앞뒤에는 수십 명의 하인들이 이고지고 줄줄이 가다가 각시 숲에 당도하여 잠시 쉬어 가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숨을 돌린 일행이 막 떠나려 할 때였다. 각시가 탄 꽃가마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여 여종을 시켜 가마 문을 열고 보니 가마 속 새 각시가 어느새 죽어 있었다. 그러니 기쁘고 신나기만 하던 산행길이 눈물과 통곡으로 얼룩진 초상 마당으로 변하였다. 할 수 없이 발 빠른 젊은 사람을 골라 곡성 본가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얼마 후에는 친정 부모가 초죽음이 되어 각시 숲에 당도하여 방성통곡을 하며 가마를 붙들고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저승길이 멀다 한데 어찌하여 더디기만 하느냐고 타이르자 그제야 거짓말처럼 가마가 땅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 후로 해마다 그날이 오면 각시 숲 일대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각시귀신이 나와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여러 해를 그러다가 마침내 동네 사람들이 의논 끝에 각시 숲에다가 가마를 만들어 각시귀신을 위로하고 정월 열나흘 날이 되면 제사를 지내 주기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각시귀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각시 숲 마을 사람들이[송재일] 정월 열나흘 날이면 각시탑에 제물을 바치는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한내리 한사 마을과 우곡리 부근에 집성촌을 이루고 대대로 살던 창녕 조씨(昌寧曺氏) 집안의 묘령의 아름다운 규수와 순창을 본관으로 한 염씨 총각은 양쪽 부모의 허락 아래 장래를 약속하였다. 그런데 연산군(燕山君)이 채홍사(採紅使)라는 벼슬아치들을 통해 전국의 어여쁜 여인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횡포를 자행할 때 조 진사의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염씨 총각은 이 사실을 알고도 속수무책의 현실을 한탄하며 식음을 전폐하더니 “조 진사의 딸이 한양 가는 길목에 묻어 달라.”는 말과 함께 죽고 말았다.
때가 되어 채홍사가 조 진사의 딸을 가마에 태우고 가던 중 염씨 총각이 죽어 묻혀있는 곳에서 잠시 쉬는 동안 조 진사의 딸은 자결하고 말았다. 두 남녀의 사랑을 하늘이 허락하였는지 가마꾼들이 가마를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고 가마와 시체가 땅에 붙어 버렸다. 조 진사 내외와 순창 군수가 둘의 사랑이 영원하도록 가마탑을 세워 주기로 약속하고서야 가마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돌로 만든 가마탑을 세우고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위치]
순창 교육 지원청과 순창 중앙 초등학교를 등지고 길 건너 10시 방향 송재일의 집 대문 앞에 있다.
[형태]
하대석은 한 변이 185㎝이고 높이가 19㎝이다. 하대 중석은 한 변이 120㎝, 높이가 22㎝로 되어 있는데 그 위에 16㎝의 하대 갑석을 올려놓았다. 상대 중석은 네 개의 돌을 이용하여 탱주(撐柱)[버팀기둥]와 우주(隅柱)[건물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가 표현되어 있고 한 변이 103㎝, 높이가 54㎝이다. 상대 갑석은 한 변을 119㎝, 높이를 11㎝로 하였는데, 상대 갑석 위 가운데 부분에 옥개석(屋蓋石)을 뒤집어 올려놓았다. 옥개석은 한 면의 길이가 70㎝이고 높이는 35㎝이다. 탑의 형태로 보아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절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폐절터의 석탑으로 기단부와 옥개석 하나만 남아 있다. 기단은 비교적 온전하다. 남계리 가마탑 뒤에는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