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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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景濬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산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홍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12년 - 신경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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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81년 - 신경준 사망 |
현 소재지 | 신경준 묘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산15 |
성격 | 묘비 |
관련 인물 | 신경준(申景濬)[1712~1781] |
재질 | 화강암[좌대·개석]|오석[비신] |
크기(높이,너비,두께) | 비신 115㎝[높이]|44㎝[너비]|19㎝[두께] |
소유자 | 고령 신씨 종중 |
관리자 | 고령 신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의 묘비.
[개설]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본관은 고령,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庵)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승정원 좌승지, 제주 목사 등을 지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훈민정음 운해』, 『일본 증운(日本證韻)』, 『언서 음해(諺書音解)』, 『평측운호거(平仄韻互擧)』, 『병선책(兵船策)』, 『수차 도설(水車圖設)』, 『강계지(疆界志)』, 『산수경(山水經)』, 『산경표(山經表)』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중 『산경표』는 원본이 분실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산맥 지도라 할 수 있다.
[건립 경위]
건립 연도가 무진년(戊辰年) 4월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정확한 연도는 불분명하나 신경준이 세상을 떠난 뒤의 무진년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신경준 사후의 무진년은 1808년(순조 8)과 1868년(고종 5)이다.
[위치]
순창읍에서 국도 24호선을 따라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산 사거리를 지나면 태자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섬진강을 따라 형성된 산자락 중턱 너머 화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신경준 묘비(申景濬墓碑)가 있다.
[형태]
화강암의 방형 대석(臺石) 위에 오석(烏石)으로 비신(碑身)을 세우고 화강암의 옥개형 개석을 올렸다. 비신은 높이 115㎝, 너비 44㎝, 두께 19㎝로 크지 않은 편이며 재질이 오석으로 단단한 편이어서 글씨는 판독이 가능하다. 새로 세운 비가 구비(舊碑) 옆에 나란히 있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지제교 고령 신공 경준지묘 배 숙부인 평창 이씨 부좌(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高靈申公景濬之墓配淑夫人平昌李氏祔左)’라고 넉 줄의 해서체로 새겼다. 음기(陰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측면에 무진 사월 일(戊辰四月日)이라는 간지와 달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현황]
행적을 기록한 음기도 없는 작고 초라한 비가 묘 앞에 세워져 있다. 새로 세운 큰 비가 구비 옆에 있는데, 이 비에는 신경준의 행적을 기록한 음기가 새겨져 있다. 구비는 글씨를 판독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나, 측면의 간지는 마모되기 시작한 상태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