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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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申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순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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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 창신리(昌新里) 한자명을 창신리(昌申里)로 변경 |
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83㎢ |
가구수 | 67가구 |
인구[남/여] | 120명[남 62명/여 58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창신리(昌申里)는 창신(昌申) 마을과 정동(鼎洞) 을 통합해서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창신리는 ‘역몰[驛몰]’이라고도 불렀는데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원위전(院位田)을 나눠 준 것으로 보아 역이 있던 마을로 오래전에 형성된 마을로 보인다. 개항기인 고종(高宗) 때 옥과에서 사또가 출발하면 창신을 경유해서 지나갔다고 한다. 정동은 마을 뒷산 모양이 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솥 정(鼎)’ 자를 썼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창신 마을과 정동 마을을 창신리(昌新里)로 통합하였다. 1934년 한자명을 창신리(昌申里)로 바꾸었다.
[자연 환경]
창신리는 순창읍에서 1㎞쯤 떨어진 곳으로, 유등면 서남쪽에 위치한다. 동쪽과 북쪽으로 건곡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순창읍 가남리와 접한다. 남쪽으로 풍산면 상촌리가 있다. 거등산[200m]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온 한 지맥이 300여m쯤 되는 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아 나가며 마을을 이룬다. 창신 마을 북쪽 골짜기 관음사가 있던 곳을 가람자골이라 하고, 창신리 서쪽에 있는 당산을 당산몰이라 부른다. 순창읍 남계리에서 창신리로 넘어오는 고개를 잉어가 뛰는 형상이라 하여 비리(飛鯉) 고개라 하고, 가람자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거부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장자실이라 부른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창신리의 면적은 1.83㎢로, 이 중 논 78만 8,387㎡, 밭 23만 9,451㎡, 임야 35만 1,284㎡이다. 인구는 창신 마을이 41가구, 72명으로 남자가 35명, 여자가 37명이다. 정동 마을은 26가구, 48명으로 남자가 27명, 여자가 21명이다. 군도 11호선이 창신리 서남쪽으로 지나고, 지방도 730호선이 창신리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난다. 또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정동 마을 옆으로 지난다.
지방도 730호선 변에 윗당산인 할아버지 당산이 있고 서쪽에 할머니 당산이 있다. 그 중앙에 땀떼기 샘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역관이 원위전의 좋은 논을 착복하고 가람자골 천수답으로 대치하는 바람에 “창신 역답이 모내기를 하면 전국 모내기가 끝난다.”고 하는 속설이 전해 온다. 유등면 창신리 325-1번지에 자리한 수령 290여 년 된 느티나무는 1982년 9월 20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는데, 수고가 11m, 수관 폭이 11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