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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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사(崔泗)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최씨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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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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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증조할아버지는 김숙문(金叔文)이고,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원록(金元祿)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국량(元國良)의 딸이다. 김대덕(金大德)은 큰아버지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된 후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 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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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불교의 중심지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하여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해 가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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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곳에 세우므로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정자는 누각보다는 작은 건물로,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트인 곳에 주로 입지하였으며,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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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청(崔淸)의 사당. 모송사(慕松祠)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의 파조인 최청[1344~1414]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청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충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 호는 관가정(觀稼亭)·송음거사(松蔭居士)이다. 국도 29호선 구 도로변에 있는 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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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인 최청(崔淸)의 사당. 모송사(慕松祠)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관가정파(觀稼亭派)의 파조인 최청[1344~1414]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청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충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 호는 관가정(觀稼亭)·송음거사(松蔭居士)이다. 국도 29호선 구 도로변에 있는 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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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은 지리적 특성상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한 곳이 아니었지만, 여유와 한가로움을 즐겼던 문인의 문학적 자취가 서려 있으며 다채로운 문학 작품이 남아 있다. 서산의 문학은 서산의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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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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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 번창한 사찰.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상왕산 기슭의 보원사(普願寺)는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에 가깝게 위치해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이다. 고려 시대의 절터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재 이 폐사지를 지키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서산 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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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를 관할하였던 군(郡).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되었으며, 그 밑에 소태현(蘇泰縣)과 지육현(地育縣)이 설치되었다. 서산 지역은 통일 신라 시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중국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는데 최치원(崔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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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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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누정. 오현정(富城山五賢亭)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과 연고가 깊은 부성산의 부성산성(富城山城) 내에 위치해 있다.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자리하는데, 부성사(富城祠)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언덕을 넘어가기 전 좌측에 부성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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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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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857~?]이 886년(정강왕 1)에서 893년(진성여왕 7)까지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부임했을 때 부춘산의 상부, 중부, 하부의 세 곳에 암자를 지었다고 하나 모두 확인할 수 없다.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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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보물 제105호]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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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市). 서산시는 태안반도에 속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최근의 대산항 건설 및 서해안고속국도 개통이 맞물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이다. 가야산 인근의 내포 지방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며,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이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새는 가창오리와 장다리물떼새이다. 가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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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했던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전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교화 기구이다. 서원은 서재(書齋)·정사(精舍)·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사(祠)·리사(里社)·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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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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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자연 마을인 용비동(龍飛洞)에서 ‘용’자와 보현동(普賢洞)에서 ‘현’자를 따서 용현리(龍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해미군 부산면 갈골[葛洞], 보현동, 벌말[伐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용현리는 용현1리와 용현2리로 구성된다. 용현1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군 동음암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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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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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 이전 시기의 교육.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 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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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 종교계가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들 종교는 독립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 문화 발전 창달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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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달제(崔達悌)[1669~1731]는 서산의 지곡면 독주동(犢走洞)[현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 애현마을 동남쪽]에 살았다. 부모가 희귀한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약을 구해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니 하루는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약이 있는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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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통일 신라 말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일진(崔日鎭)[1727~1781]은 효심이 깊어 정성과 예로써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들자 6년 동안 백방으로 치료법을 수소문하였다. 부모의 병세가 위중해졌을 때는 그 상태를 알기 위해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부모가 죽어 장사를 지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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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부성군[현 서산시] 태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이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육두품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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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통일 신라 시대는 신라가 신라·당 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676년부터 후백제가 건국한 901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북쪽의 발해(渤海)[698~926]와 남쪽의 통일 신라가 병립했던 점에 주목하여 남북국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삼국 통일과 함께 서산 지역에는 웅주(熊州) 부성군(富城郡)과 지육현(地育縣)·소태현(蘇泰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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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팔봉면의 가장 오래된 집성촌은 금학리의 경주 최씨로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는 최사(崔泗)인데 최사는 최몽량(崔夢亮)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서산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경주 최씨가 서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곡면 산성리이며, 최몽량의 정려가 남아 있다.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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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한자로 표현한 시 작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한시(漢詩)는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뿌리 깊은 전통성을 내재하며 발전해 왔다.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과 넉넉한 인심이 어우러진 서산에서 시심(詩心)을 토로하고 운치를 표현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유명한 시인 묵객들은 서산과 인연을 맺고, 한시를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읊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