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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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福樞 |
영어공식명칭 | Jang Bokchu |
이칭/별칭 | 경하(景遐),사미헌(四未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정철 |
출생 시기/일시 | 1815년 - 장복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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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68년 - 장복추 서원 철폐령으로 우산서원이 폐지되자 재건 운동에 앞장섬 |
활동 시기/일시 | 1881년 - 장복추 경학으로 조정에 천거되었으나 사양 |
활동 시기/일시 | 1894년 - 장복추 부호군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900년 - 장복추 사망 |
출생지 | 장복추 출생지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
수학|강학지 | 묵방정사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
수학|강학지 | 녹리서당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
묘소|단소 | 장복추 묘소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인동 |
대표 관직|경력 | 부호군|가선대부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지역에서 수학한 영남 유림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가계]
본관은 인동(仁洞).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8세손이고, 할아버지는 장주(張儔), 큰아버지는 장관(張寬), 아버지는 장굉(張浤)이다. 3세 때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장복추(張福樞)[1815~1900]는 1815년(순조 15) 칠곡 각산 녹리[현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말 영남 지방의 삼징사(三徵士)[장복추·김흥락(金興洛)·유주목(柳疇睦)]의 한 사람이자 삼학자[장복추·이진상(李震相)·김흥락]의 한 사람으로 조선 성리학의 거장이었다. 스스로 학문을 완성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만년에는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묵방 마을에 묵방정사[자언정(玆焉亭)]을 지어 후학 양성에 힘썼다.
1862년 삼남(三南)에 민란이 발생하여 인동까지 영향이 미치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亂民)들을 설득하여 안정시켰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를 배향하던 우산서원(愚山書院)[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이 철폐되자, 재건에 앞장섰다.
학문과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던 1881년(고종 18)에는 경학(經學)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 절충장군용양위 부호군(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등에 잇달아 제수되었지만, 모두 사양하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였다. 1894년에는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된 데 이어 종2품 하계(下階) 품계인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발생하여 인동 일원의 유림들이 거의(擧義)를 요청하자, 군사에 어두운 서생이 무모하게 참여할 경우 목적을 이루기 전에 화만 자초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완곡히 사절하였다. 1900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장복추는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장현광과 정구의 학문적 특성을 계승하며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학문 완성 후에는 후진 양성에 주력하여 4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배출했고, 예학(禮學)과 경학(經學) 등에 많은 저술을 남겼다. 장복추와 학문적 논의를 했던 유생들로는 이진상과 그 문도(門徒)들인 허유(許愈)·곽종석(郭鍾錫)·김진호(金鎭祜)·이승희(李承熙)·이정모(李正模)·장석영(張錫英) 등이 있었다. 하지만 장복추는 친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입장은 다소 달리하여 퇴계학파의 전통적 견해에 훨씬 가까웠다. 장복추가 이진상이 주장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이 결국 왕양명(王陽明)의 설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주요 저술로는 『사미헌집(四未軒集)』, 성리학의 기본적인 쟁점에 속하는 태극에 대한 설명에 주목한 「태극도설문답」, 사부모(事父母)·우형제(友兄弟) 등 9조목에 걸쳐 제가(齊家)의 주요 문제를 뽑아 실천 방안을 제시한 「훈몽구잠(訓蒙九箴)」,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숙흥야매잠」에 관련된 주해(注解)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집약·정리하여 퇴계 철학을 심화·발전시킨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50세], 어린이들의 초학 교육을 해설한 「훈몽요해(訓蒙要解)」[62세]·「동몽훈(童蒙訓)」[77세], 그리고 「삼강록간보(三綱錄刊補)」, 『금오산유록(金烏山遊錄)』, 경학과 예학에 관한 핵심적인 사항 58조를 골라 요약·정리한 「문변지론(問辨至論)」[75세]과 「사서계몽(四書啓蒙)」·「가례보의(家禮補疑)」·「독서쇄록(讀書瑣錄)」·「월천강의(月川講義)」·「모원당강의(慕遠堂講義)」·「흑방강의(墨坊講義)」 등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 장복추의 장수비(藏修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