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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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溪亭里 |
영어공식명칭 | Gyej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계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계곡을 흐르는 하천 양쪽에 농토와 마을이 있고 강변에 나무가 정자(亭子)나무처럼 둘러 있다 하여 ‘계정(溪亭)’이라 이름하였다. 계정1리의 자연 마을로 묵은터[구계(舊溪)·유산(酉山)], 새터[닭목·계항(鷄項)·계산(鷄山)·계신(鷄新)], 올바다[올바대·조평(條坪)], 수진동(修珍洞)[후생촌(厚生村)]이 있고, 계정2리의 자연 마을로 중마[계중(鷄中)], 구정(鳩亭), 웃딩기[원기(元基)], 덕은(德隱)이 있다.
묵은터는 이미 마을 터가 있었던 곳에 일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을 뒷산이 닭이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유산이라고도 하였다. 수진동은 1951년 박노진(朴魯珍)이 난민들을 위하여 만든 마을로, 수륜면의 ‘수(修)’ 자와 박노진의 ‘진(珍)’ 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수진동 혹은 후생촌이라고 불렀다. 중마는 350년 전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이주하면서 마을로 발전하였는데, 구정과 계산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동래 정씨와 성산 여씨(星山呂氏)가 함께 살고 있다. 웃딩기는 1600년(선조 33)께 두릉곡 두씨(杜氏)와 성산 이씨(星山李氏)가 거주하면서 만들어졌고, 1700년(숙종 26)쯤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사아방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 지사아방이 지사방으로 바뀌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계정동으로 하고 지사면과 법산면을 합한 지사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지사면과 청파면을 수륜면으로 합면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수륜면 계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계정리의 북쪽, 남쪽, 서쪽은 산지이며, 동쪽으로 대가천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지류 하천이 끝부분에 넓은 선상지 지형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농토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유산(酉山)은 묵은터 서편의 산이며,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백리와 군계(郡界)를 이룬다. 주변 능선에 고분군(古墳群)이 산재한다. 계정천(溪亭川)은 고령군 덕곡면 백리 밤티에서 발원하여 계정리에서 대가천과 합류하는 2급 하천이다. 원기천(元基川)은 원기 마을 위에서 발원[500m 지점]하여 마을 아래에서 계정천으로 들어가는 소하천이다.
[현황]
계정리는 수륜면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 남부는 수륜면의 오천리와 보월리,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서부는 고령군 덕곡면과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93㎢이며, 계정1리와 계정2리 2개 행정리에 153가구, 238명[남 124명, 여 1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계정리의 인구는 1974년 1,129명에서 1994년 425명, 2001년 228명으로 크게 감소한 후 2021년 238명으로 다소 증가하는 추세이다. 가구 수는 1974년 163가구에서 2001년 125가구, 2010년 108가구로 계속해서 감소하다가 2021년 153가구로 증가하였다.
국도 제33호선이 대가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지나간다. 계정리의 구정과 덕곡면의 경계 산에 ‘할미산성’이라고도 부르는 덕은산성(德隱山城)이 있다. 닭목에 여희문(呂希文)을 위한 재실인 추모재(追慕齋)가 있고, 묵은터에 박세엽을 위한 묘재(墓齋)인 오사재(吾思齋)가 있다. 그밖에 원후재(遠厚齋)와 경효사(景孝祠), 평암정(平巖亭) 등이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