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77
한자 星元里
영어공식명칭 Seongw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성원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성원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307㎢
가구수 162가구
인구[남/여] 285명[남 164명/여 121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성산 아래 산남면(山南面)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성원(星元)’이라 이름하였다. 성원1리의 자연 마을로는 황신(黃新) 마을이 있으며, 성원2리의 자연 마을로는 새원 마을, 토죽골 마을이 있다.

황신 마을은 묘골이라고도 불리는데, 경상감사가 성주목을 순시하면서 주변에 나무가 누렇게 무성한 것이 풍치가 새롭다 하여 ‘황신’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취락 구조 개선 마을’로 지정되어 마을 인근에 택지를 조성하고 근대식 주택과 도로와 농수로 등을 정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경관으로 만들어졌다.

새원 마을은 신원(新院), 신기 마을, 새뜸이라고도 불린다. 성주목에서 10여 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새로 원(院)이 생겼다는 뜻에서 ‘신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토주골 마을은 토죽곡(土竹谷)으로도 불리며, 새원 마을에서 백천(白川)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동학 농민 운동(東學農民運動) 때 관군과 동학 교도가 싸운 장소라 하여 ‘토적골[토적곡(討賊谷)]’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하며, 이후 음이 변하여 토죽골[토죽곡(土竹谷)] 또는 토주골[토주곡(土周谷)]이라 불린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산남방(山南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 산남면과 오도면을 오산면으로 통합하고, 도남면과 화곡면을 남곡면으로 통합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포동, 하유목동, 신원동, 황신동, 신흥동 일부를 합하여 성원동이라 하고 오산면과 남곡면을 병합한 선남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선남면 성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산[383.4m]이 남쪽 경계를 이루며, 복호산(伏虎山)[187.1m]이 북서쪽 경계를 이룬다. 북동쪽은 대곡산(大谷山)[246.3m]에 의해 선남면 오도리와 경계가 구분된다. 성산의 동쪽과 복호산 일대는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질 편마암을 기반암으로 하며, 성산의 북서쪽과 대곡산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와 쥐라기에 형성된 화강 섬록암이다. 기반암이 만들어진 지 오래된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질 편마암은 중생대에 만들어진 화강 섬록암보다 풍화와 침식을 오랫동안 경험하여 산지의 해발 고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성원리의 북쪽 경계를 따라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백천은 성원1리 마을 회관이 있는 황신 마을에서 남쪽으로 흘러 성원리의 남동쪽으로 빠져나간다. 백천은 하폭이 110m 내외이며, 하천 바닥은 모래가 두껍게 쌓여 있으며 하천의 가장자리에는 습지 식물이 자라고 있어 하천 습지의 경관을 나타낸다. 백천이 만든 넓은 충적 평야는 백천의 우안(右岸)인 성원지 아래 황신 마을 동쪽의 배다리들과 좌안(左岸)에 해당하는 토죽골 마을 앞 토죽골들이다. 모래의 함량이 높으며 자갈 함량이 없는 양토로서 배수가 좋지 못한 편이다.

[현황]

성원리선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북서쪽으로 국도 제30호선을 경유하여 약 5㎞ 떨어져 있다. 북동부와 동부, 남부는 선남면 오도리관화리, 신부리, 서부는 성주읍 성산리, 서북부는 월항면 대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1일 기준 면적은 4.307㎢이며, 성원1리와 성원2리 2개 행정리에 162가구, 285명[남 164명, 여 1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백천성원리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만든 평야 지대에는 주로 참외를 재배하며 논농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성원리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국도 제30호선이 있어 성주군 시가지와 대구광역시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용이하다.

황신 마을은 성주읍에서 동쪽으로 지부티 고개를 넘어 국도 제30호선의 북쪽에 자리한다. 마을 앞에 배다리들이 넓게 펼쳐졌고, 백천을 사이에 두고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과 마주 보고 있다. 고령 박씨(高靈朴氏) 재사(齋舍)인 일남재(逸南齋)와 경모재(景慕齋)가 있으며, 성산 이씨(星山李氏) 정자인 일강정(一江亭)이정현의 유허비가 있다. 또 황신 마을 북쪽 매롱샘 고개를 지나 골짜기에 있는 와골에는 성산 이씨 재사인 모선재(慕先齋)가 있다.

새원 마을은 황신 마을의 남동쪽으로 800m 정도 떨어져서 국도 제30호선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성주 봉수대(烽燧臺)의 보조 마을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마을 뒷산에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증조(曾祖) 이상 5대의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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