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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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穆祠 |
영어공식명칭 | Munmoksa |
이칭/별칭 | 뇌암서원,뇌암서재,뇌암사우,뇌암향사,삼현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사관정길 10[관정리 30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건립 시기/일시 | 1699년 - 뇌암서원[문목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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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706년(숙종 32) - 뇌암서원[문목사] 훼철[1706]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5년 - 뇌암서원[문목사] 훼철[1865]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6년 - 서원은 복원하지 않은 채 제사만 허용하고 부조묘인 문목사로 운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05월 31일 - 문목사 연기군 향토유적 제3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문목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문목사 연기군 향토유적 제37호 지정 해지 |
현 소재지 | 문목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사관정길 10[관정리 303-1] |
원소재지 | 문목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사관정길 10[관정리 303-1] |
성격 | 건물 |
양식 | 전통 한옥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있는 이상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사당.
[개설]
문목사(文穆祠)는 충청도 전의현에 조선 후기의 학자 타우(打遇) 이상(李翔)[1620~1690]을 모신 미사액 서원인 뇌암서원의 다른 이름이다. 각종 기록에 뇌암사우(雷巖祠宇), 뇌암서원(雷巖書院), 뇌암향사(雷巖鄕祠), 삼현사(三賢祠)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서원은 복원되지 않은 채 문중에서 부조묘(不祧廟)[조선 시대에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로 ‘문목사’를 세우고 제향을 올리고 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사관정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문목사는 타우 이상을 모신 미사액 서원 ‘뇌암서원’이 철폐된 후 세워진 부조묘 형태의 사우이다. 조선 후기 『열읍원우사적』과 『문헌비고』에는 뇌암사우, 『서원가고』와 『동국원우록』에는 뇌암서원, 『조두록』에는 뇌암향사, 『연기군지』(1988)에는 삼현사 또는 문목사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서원 명칭의 유래가 되는 지명 ‘뇌암’은 가까운 언덕 위에 있는 ‘벼락바위’라 부르던 큰 바위를 말한다. 현재의 사우를 문목사로 부르게 된 것은 배향된 이상의 시호가 문목이기 때문이다.
배향 인물인 타우 이상은 우봉이씨(牛峰李氏)로, 우봉이씨는 연산군대에 전의현 관정리에 입향한 후 후손이 세거하게 되었다. 이상은 생전에 관정리에서 뇌암서당 또는 사관정이란 정자에서 서당을 열고 제자를 키웠다고 한다.
1699년(숙종 1) 이상이 기사환국(己巳換局)[조선 숙종 때 남인이 희빈장씨 소생인 원자 정호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으로 옥사한 뒤 전의현 일대의 선비들이 논의하여 사우를 건립하고 제향을 올리게 되었다. 최초로 창건된 위치는 현재의 문목사 터가 아닌 옛 사관정이 있던 곳이라 한다. 문목사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골짜기 안쪽이다.
중앙 정계의 노론과 소론 대립으로 뇌암서원은 창건된 후 1706년(숙종 32)에 처음 훼철되며, 창건을 주도했던 유생 신후윤은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론이 재집권하자 1717년에 다시 복설되며 이상의 동생 이익과 조카 이만성을 함께 제향하게 되었다. 이때 ‘삼현사’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725년에는 서원 건립을 발의한 제자 신후윤과 홍방을 추향하며 ‘오현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1865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다른 서원들처럼 뇌암서원도 철폐된다. 다만 1886년(고종 23)에 영의정 심순택(沈舜澤)의 상소에 따라 계속해서 제사를 모실수 있게 함으로써 이상의 부조묘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형태]
문목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안에는 위패가 있고 ‘뇌암서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에는 ‘문목사’라는 현판이 있다.
[현황]
문목사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충청도 전의현의 대표적인 서원인 뇌암서원과 관련된 사우이다. 특히 노론과 소론 대립 속에 전의 지역 노론의 집결지로서 중요한 위상이 있었다. 전의 지역 주요 성씨인 우봉이씨, 거창신씨, 남양홍씨의 문중 활동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