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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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宗傳統市場 |
영어공식명칭 | Sejong Traditional Market |
이칭/별칭 | 조치원재래시장,세종시장,시장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조치원8길 42[정리 19-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윤철원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원리 일대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
[건립 경위]
『동국문헌비고』에 조치원장이 4일, 5일 열린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개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시장이 열린 지역은 현재 조치원읍 상리와 평리에 걸친 지역으로, 일명 구시장(舊市場)이라고도 불리었으나 1925년에 폐지되었다.
일제는 1916년 6월부터 신시장(新市場) 구획공사를 실시하여 1917년 5월 준공·이전하였다.
[변천]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치원장은 조선시대부터 4일, 9일 정기적으로 열리던 5일장이다. 당시 시장이 열린 곳은 조치원읍 평리~상리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구시장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905년 조치원역이 개설되면서 1916년에 새로운 시장 부지를 조성하고 1917년에 이전하였다. 기존에 운영되던 구시장은 1925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 무렵에 개설된 조치원 어시장(魚市場)은 공주, 청주, 충주, 강원 남부지역까지 해산물을 공급하여 유명하여졌다. 미곡시장은 조치원 인근 지역의 곡물류를 일본 등에 수출하는 내륙지역 농산물 집산지 역할을 하였다.
청주의 청석학원 설립자인 김원근·김영근 형제가 조치원에서 해산물과 곡물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치원장은 1919년 3월 30일 애국지사 홍일섭을 비롯한 1,500여 명이 3·1 만세 시위를 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치원 시장은 1960년대까지 번창하였으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1970년대부터 점차 상권이 축소되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는 대형마트로 인하여 전통시장 기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에 2004년부터 시장 환경개선사업으로 비가림 아케이트를 설치하기 시작하여 주차장, 고객지원센터 등을 건립하였다.
동일한 구역에 조치원 시장상인회 등 3개의 시장상인회가 있었으나 2013년 4월 세종전통시장상인회로 통합하고 시장 명칭도 세종전통시장으로 바꾸었다.
[구성]
시장 규모는 영업장 면적 39,600㎡에 320개 점포, 상인수는 700여 명이다.
고객편의 시설로는 전통시장고객지원센터 1동[부지면적 473㎡, 건축면적 516.48㎡, 지상 2층], 주차공간[271면], 공중화장실[3동] 등이 있다.
5일장과 상설시장이 혼재된 시장이다.
[현황]
과거에는 싸전[미곡], 고추전, 마늘전, 유기전, 옹기전, 채소전, 어물전, 포목전, 기성복전, 닭전, 우시장 등이 나뉘어 시장이 형성되었으나 대부분 사라졌다.
요즘에는 싸전, 마늘전, 고추전, 채소전 등이 겨우 명맥을 이어 가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