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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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義碑岩寺靈山會掛佛幀畫 |
이칭/별칭 | 세종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다방리 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제작 시기/일시 | 1657년(효종 8) -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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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9월 20일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재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비암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다방리 4] |
원소재지 | 비암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다방리 4] |
성격 | 서화류 |
작가 | 신겸|응상|응열|덕회 등 승려 10명 |
서체/기법 | 17세기 청주지역 수화승 신겸의 도상적 특징인 압도적 크기의 본존과 상대적으로 주변 협시를 작게 배치하는 구도 |
소유자 | 비암사 |
관리자 | 비암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 괘불도.
[개설]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全義卑岩寺靈山會掛佛幀畵)는 야외에서 설행되는 의식을 위하여 조성된 대형 불화로, 내용적으로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설행된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묘사하였다. 중앙에 항마촉지인을 결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협시인 문수·보현 보살과 사천왕, 2위의 보살이 배치되었다. 상단에는 12대 제자와 하부 권속들이 가득 표현되었다. 2007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재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로 다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 크기는 가로 486㎝, 세로 658㎝이다. 화면 중앙에 정면을 바로보는 석가여래가 압도적으로 크게 그려졌으며, 우견편단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배치되었다. 본존 주위에는 6타방불과 시방제불, 용왕과 용녀가 상단을 둘러싸고 있다. 옆에는 제석천과 범천, 가섭과 아난, 12제자와 신중들이 작게 배치되었다. 하단부에는 좌우협시보살인 문수볼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었으며, 화면 양 끝에 사천왕이 자리한다.
전체적인 도상의 형태를 살펴보면 17세기 다양한 형식의 괘불화 중 비암사 고유의 장대한 형식이 돋보인다. 즉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 크기의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의 수인을 하고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권속들을 작게 묘사하여 영산회의 성대함과 석가모니불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화면 구성이 느껴진다.
색채는 붉은색과 녹색 계열의 파스텔톤 색감으로 채색되었다. 신광과 두광의 색을 붉은색과 청색으로 변화를 주어 구분하였다. 색 문양과 금 문양은 당시 일반적인 괘불에 비하여 다소 단순화되었으며, 본존의 눈과 나한 및 사천왕의 상호 표현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음영을 표현하였다. 화면에는 많은 부분을 구름으로 묘사하였다. 구름은 붉은색·녹색·황색·분홍색 총 4가지색으로 다채롭게 채색하고, 끝부분은 흰색으로 바림[그림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에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해서 정돈되고 화사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하단 장황(裝潢)[책이나 서화첩 등을 종이 또는 비단으로 발라서 꾸밈]에 묵서로 적은 화기(畵記)가 남아 있다. 화기를 통하여 괘불도가 1657년 신겸(信謙)을 수화승으로 하여 응상(應祥), 응열(應悅), 덕회(德晦) 등 10명의 승려가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을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수화승 신겸은 ‘인조빈전도감의궤’의 기록을 통해 17세기 청주 지역 화승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 작품으로 청주 보살사 영산회 괘불도(1649)[보물 제1258호], 안심사영산회괘불탱(1652)[국보 제297호],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1657)가 전해진다. 신겸의 현전하는 작품은 모두 동일한 ‘영산회괘불도’로서 한 수화승이 제작한 동일한 주제의 작품이 시기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신겸은 승려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의 화기에 ‘충청도총섭겸승장(忠淸道總攝兼僧將)’으로 기록되어 충청도 산성인 상당산성(上黨山城)과 산성 내 승영 사찰인 구룡사, 남악사, 장대사, 청심사를 관장하는 도총섭 및 승장으로서의 입지에 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징]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의 도상 구성은 17세기 청주 지역 수화승 신겸의 도상적 특징인 압도적 크기의 본존과 상대적으로 주변 협시를 작게 배치하는 구도로 나타난다. 이는 주제인 영산회의 장엄한 느낌은 장대한 석가모니불의 형상으로 통해 극대화 되는 시각적 느낌을 준다.
이러한 신겸의 구도법은 현전하는 그의 세 폭의 작품을 살펴보았을 때 「보살사 영산회괘불도」(1649)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후 「안심사 영산회괘불도」(1652)에서 화면에 맞게 변화하였으며, 「비암사 영산회괘불탱」(1657)에서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수용되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는 수화승 신겸의 현전하는 세 폭의 ‘영산회괘불도’ 중 가장 늦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신겸만의 구도적 특징과 화풍이 잘 남아 있다. 또한 화기에 ‘충청도총섭겸승장(忠淸道總攝兼僧將)’으로 기록되어 있어 신겸이 단순한 화승이 아니라 산성과 승영사찰을 관장하는 도총섭 및 승장으로, 17세기 화승의 다양한 역할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조선 후기 불교 회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