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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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性濟里 |
영어공식명칭 | Seongjeri |
이칭/별칭 | 성재,성작골,도맥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성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정보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뒷산이 성(城)과 같아서 성재·성작골·도맥(道脈)이라고도 불렀는데 남양홍씨 학자 가운데 성제(性劑)라는 사람이 있어 마을을 성제로 많이 호칭하였다. 마을 명칭에서 제가 재로 바뀐 것은 한자 표기의 오류이다. 성제리에는 둥구리재, 서당골, 새말, 골말, 성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둥구리재마을은 성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지형이 둥우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말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로, 지형이 새의 둥우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골말마을은 기와가 많았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연서면사무소가 있는 성뜸마을은 서낭당이 있었고, 여기에서 무녀들이 제를 지냈다. 제는 길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북이면(北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연기군 북이면 원봉리·도산리·봉촌리·과성리·괴동리·괴촌리를 병합하여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성제리(性齊里)가 되었다. 1917년 연기군 서면 성제리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성제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성제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가운데는 월하천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흐르며, 성제교를 통하여 동쪽과 서쪽 마을이 연결된다. 동쪽의 성제1리는 무태들의 논이 비교적 넓고, 지대가 높은 동쪽은 밭과 과수원이 넓게 분포한다.
서쪽의 성제2리는 대부분 산지 지역으로, 북서 지역은 100m 이상의 산지이다. 북서에는 작대골 소류지가 있어 여기에서 남동으로 흐르는 소하천 주변에는 논이 좁게 나타난다.
[현황]
연서면 중부 동쪽에 있는 성제리의 면적은 3.0㎢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229가구에 총 433명이다.
마을의 하천 주변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행하여진다.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서는 과수 및 밭농사 활발하다. 복숭아를 중점적으로 재배하는 서당골농원이 있다.
농공시설로서 상록농장이 있고, 전기공사로 태명전기가 입지하여 있다.
교통은 월하천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남북으로 관통하고, 지방도는 조치원읍과 연결된다.
성제리는 남양홍씨, 문화류씨, 기계유씨가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 온 집성촌이다. 곳곳에 선조들의 묘소, 묘비, 석조물, 사당 등이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