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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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禾積淵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흥모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54년 - 「화적연」 저자 이서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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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25년 - 「화적연」 저자 이서구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32년 - 「화적연」필사 |
배경 지역 | 화적연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
성격 | 한시 |
작가 | 이서구 |
[정의]
조선 후기 영평에 거주했던 이서구가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오언 고시의 한시.
[개설]
「화적연(禾積淵)」은 영평에 거주하였던 조선 후기의 문신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영평 8경’ 중에 하나로서 영평현의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화적연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이서구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1~1793], 박제가(朴齊家)[1750~1805], 유득공(柳得恭)[1748~1807]과 더불어 이른바 ‘사가시인(四家詩人)’ 중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청나라에까지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화적연」은 이서구의 문집 『척재집(惕齋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오향호산수(吾鄕好山水)[우리 고향 포천의 산수가 좋다고 하지만]
자담최궤이(玆潭最詭異)[화적연이 가장 아름답구나]
진재조유경(眞宰造幽境)[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할 즈음에]
기상우일시(奇想偶一試)[기상천외의 작품을 시도하였도다]
문명석이구(聞名昔已久)[내 들은 지 이미 오랬으나]
명수금내지(冥搜今乃至)[와서 보기는 지금이 처음이다]
반연라등위(攀緣蘿磴危)[얽히고설킨 댕댕이덩굴이며]
측감송학수(側瞰松壑邃)[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 구렁에 가득]
협동천류전(峽東川流轉)[동편 골짜기에서 물줄기 쏟아지고]
애단벽색취(崖斷壁色翠)[깎아지른 절벽 위에 푸른빛 감돈다]
거석시반타(鉅石始盤陀)[큰 바위 혹은 넓고 혹은 뾰족한데]
고탱홀비희(孤撑忽奰屭)[모두가 문득 힘겹기만 하여라]
회단중격획(回湍中激湱)[사방 가운데 모두 막혔으니]
상우량불피(相遇兩不避)[둘이 마주치면 피할 곳이 없어라]
감두개일홍(嵌竇開一泓)[큰 구멍이 한 호수를 이루고]
심벽의철지(深碧疑徹地)[깊고 푸른 물결은 땅속 깊이 뚫린 듯]
고운견도비(高雲見倒飛)[높은 구름은 줄지어 날고]
원일감형추(圓日鑑炯墜)[둥근 태양은 산 너머로 저무네]
음삼우가괴(陰森吁可恠)[우거진 숲은 감탄하고도 남고]
하유신룡비(下有神龍閟)[아래에는 신룡이 굽이치는 듯하다]
물성능변화(物性能變化)[자연의 무궁함이여 어찌 변화 없으리오]
반굴기무의(蟠屈豈無意)[고개 숙여 깊이 감사할 뿐이로다]
회당기풍우(會當起風雨)[마땅히 한번 비바람 부는 날에]
고택사야시(膏澤四野施)[기름진 뜰에 하늘의 은혜가 가득하리로다]
[특징]
「화적연」의 제목에는 “현인도우처(縣人禱雨處)”라는 주석이 달려 있으므로 화적연은 영평현의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서구의 「화적연」과 최익현의 「화적연」 등을 보더라고 화적연은 영평 8경의 하나로서,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창작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서구의 한시는 그의 개인적 성향 관계로 혁신적이거나 현실에만 치우치기보다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두텁고 더불어 사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사물을 관조하는 자세로 담백하게 높은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많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고귀한 내면의 깊이를 아울러 그려냄으로써 시의 격조를 높이는 데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