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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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
집필자 | 장필기 |
본관 | 경주 김씨 관적지 - 경상북도 경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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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주 김씨 입향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
성씨 시조 | 김알지(金閼智)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김씨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다. 김알지에 관하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65년(탈해왕 9) 3월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작은 금궤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금궤를 가져온 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탈해왕은 기뻐하여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金)으로 하사하였다. 그리고 알지가 태어난 시림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이후 경주 김씨는 김알지의 7세손 김미추(金味鄒)부터 마지막 왕 경순왕(慶順王)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여 587년 동안 신라를 다스렸으며, 경주를 비롯한 600여 개의 관향(貫鄕)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연원]
경주 김씨는 김명종(金鳴鍾)을 일세조로 하는 영분공 명종파, 김은열(金殷說)을 일세조로 하는 대안군 은열파, 김장유(金將有)를 일세조로 하는 판도판서공 장유파(將有派), 김인관(金仁琯)을 일세조로 하는 태사공 인관파, 김문기를 일세조로 하는 백촌공 문기파, 김덕재를 일세조로 하는 병판공 덕재파, 김존일을 일세조로 하는 장사랑공 존일파, 김정백을 일세조로 하는 수문장공 정백파로 크게 분파되었고, 각 분파마다 작은 지파가 여러 개씩 있다. 이후 경순왕 아들 9형제가 각각 분적하여 나갔고, 셋째 아들 김명종과 넷째 아들 김은열과 김순웅(金順雄) 장군 후손들만 경주 김씨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입향 경위]
17세기 중엽에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구 청산면 금동리]를 중심으로 입향하였다.
[현황]
청산면 금동리에 1934년 기록에는 55가구, 1953년 기록에는 39가구가 거주하였다. 200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총 4,464명이 포천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