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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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州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고려 시대 포주(抱州)는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견성군(堅城郡)이 되었다가 고려 초에 포주로 개칭된 행정 구역이다. 고려 현종 때 양주(楊州)에 소속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정비는 982년(성종 즉위년) 6월에 최승로(崔承老)의 건의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983년 2월에 전국에 처음으로 12목(牧)을 설치하였고, 995년에 지방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신라의 견성군이었던 포주 또한 고려 초에 개칭된 이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정비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포주는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명지(命旨)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견성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의 명칭[포주]으로 고쳤다. 성종 14년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 8년[1005]에 이를 없앴다. 현종 9년에 본 주[양주]에 소속시켰다. 명종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별호는 청화(淸化)[성종이 정한 것이다]이다”라고 하여 고려 시대 포주 관련 기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변천]
포주는 고려 초에 개칭된 명칭으로 고구려 시기에는 마홀군, 신라 경덕왕 시기에는 견성군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995년에 포주에 단련사를 두었는데 이는 지방 제도에서 군사적인 측면을 크게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경기 지역에 단련사가 파견된 곳은 포주 외에 수주(樹州)[현 부평], 금주(衿州)[현 시흥], 수주(水州)[현 수원], 죽주(竹州)[현 죽산]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실제 행정면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그 10년 후인 1005년에 모두 폐지되었다.
포주는 1018년 양주에 소속되었고 1172년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를 두게 되었다. 1069년 경기도에 속하였던 포주는 1390년(공양왕 2) 과전법 시행 준비의 일환으로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 포천의 행정 구역인 포주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하여 포천 지역사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