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339 |
---|---|
한자 | 全州李氏 |
영어의미역 | Jeon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벌곡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현동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족보 『선원선계(璿源先系)』에 의하면 이한은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 이성계(李成桂)의 6대조 이린(李隣)과 그의 형 이의방(李義方)은 고려시대 중앙 정부에 진출하였으며, 이성계의 직계 선조는 당시 여진족(女眞族)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살기도 하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로 즉위하자 전주이씨는 조선 왕실의 성씨가 되었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하고 있다.
[입향경위]
1400년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증손자인 이현동(李賢童)이 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일대에 터를 잡고 살던 가평이씨 이다림(李多林)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 후 계유정난이 일어나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이를 한탄하고 정치적 소요를 피하기 위해 장인이 살던 논산으로 이거하게 되었다.
이현동은 청동리에서 가까운 벌곡면 조령리에서 평생을 은거하며 살았으며 자식들에게 관직에 나아가지 않기를 신신당부하였다고 한다. 이후 4세손이었던 이봉주가 여산송씨와 혼인한 후 그의 아들이었던 이오륜(李五倫)이 외가가 있던 연산면 화악리로 이주하면서 원래 화악리에 터를 잡아 살고 있던 여산송씨보다 세력이 확대돼 화악리는 전주이씨 익안대군 후손들의 집성촌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현황]
1995년 기준으로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논산읍에 908가구를 비롯하여 연무읍 580가구, 강경읍 391가구, 연산면 304가구, 가야곡면 229가구 등 총 3,827가구 16,000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논산의 성씨 중 9.1%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관련유적]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이현동의 아버지 백파(白波) 이상(李常) 영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영당의 동측에 재실인 승무재(繩武齋)가 있다.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