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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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直里山城 |
영어의미역 | Sanjikri Sanseong Mountain Fortress |
이칭/별칭 | 장동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서정석 |
성격 | 성곽|석성|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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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백제 |
높이 | 2~3m |
길이 | 600m |
둘레 | 600m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장골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위치]
논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10㎞ 정도 가면 연산면 연산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6㎞ 정도 남쪽으로 가면 호남고속도로에 이르기 직전에 양촌면 신흥리가 나온다. 다시 동쪽으로 난 지방도 68호선를 타고 동쪽으로 3㎞ 정도 들어가면 산직리 장골에 이른다. 산직리 산성은 장골의 동쪽에 위치한다.
[형태]
산직리 산성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의 남쪽 끝단에 있는 해발 175m의 북쪽 산봉(山峰)과 143m의 남쪽 산봉을 에워싸면서 축조된 산성이다. 동벽은 두 산봉 사이의 능선 정상부를 지나는 반면에 서벽은 장골을 향해 산의 중턱까지 내려와 있다. 남벽과 북벽은 동벽과 서벽을 이어주면서 경사면을 지난다. 전체적인 평면형태는 마안형(馬鞍形)이며, 지형적으로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삼태기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성벽은 전체를 석축했으며, 지형에 따라 편축식(片築式)과 협축식(夾築式)을 적절히 섞어 축조하였다. 예를 들어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북벽은 협축식으로 축조한 반면에 성 안에서 가장 낮은 지형을 지나는 서벽은 편축식으로 축조하였다. 성벽은 대부분 이미 붕괴되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남아 있는 성벽은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막돌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성하였다.
부대시설로는 성문지·건물지·치성(雉城) 등이 있다. 성문지는 성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지표 조사만으로는 뚜렷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이전 조사에서 동문지와 서문지를 확인한 조사 보고가 있다. 건물지는 서벽 안쪽의 회곽도(廻郭道)와 마안부(馬鞍部)에 남아 있는데, 주변에서 기와편과 토기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치(雉)의 흔적은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동북 모퉁이에 남아 있으며, 이곳은 성 안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은 능선으로 연결되는 구간이기 때문에 성 안에서 가장 방어에 취약한 곳이다. 이곳에 치를 설치한 것도 이러한 지형적인 특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성 내에서는 백제 세발토기편·뚜껑접시편·기와편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눈에 띈다.
[현황]
산직리 산성은 현재 대부분의 성벽이 이미 완전히 붕괴되어 있는 상태다. 성 안에 건물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평탄면은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산직리 산성은 황산벌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동쪽에서 황산벌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황산벌 전투와 관련이 있는 산성으로 이해되어 왔다. 특히, 계백 장군이 신라의 5만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3영(營) 가운데 중군(中軍)에 해당되는 가장 중요한 산성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산직리 산성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고, 이 하천이 북쪽으로 흘러 대전을 거쳐 금강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보아 산직리 산성은 이 하천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하천을 통해 북쪽으로 가면 대전을 거쳐 옥천, 삼년산성쪽으로 나아갈 수 있고, 서쪽으로 가면 황산벌에 닿게 된다. 한편 남동쪽에 있는 곰치재를 지나 진산으로 나아가는 교통로를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빠른 시일 안에 산성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실시하여 증거 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