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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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蓮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집필자 | 이정훈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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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백련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관련 지명 | 못봉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관련 지명 | 제자동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관련 지명 | 중화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채록지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
성격 | 설화|시은담|동물 보은담 |
주요 등장 인물 | 백련사 스님들|백련사 주지|구렁이|명나라 공주 |
모티프 유형 | 구렁이 환생|고승 이적|동물 보은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백련사에서 구렁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는 신라 때부터 있었던 백련사의 주지 스님이 구렁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시은담(施恩談)이자, 명나라 공주로 환생한 구렁이가 백련사 재건 비용을 마련하여 은혜를 갚았다는 동물 보은담(報恩談)이다.
[채록/수집 상황]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74~76쪽에, 2004년 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무주 군지』 중권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는 미상이다.
[내용]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백련사는 신라 시대 신문왕 때 백련 선사가 머물던 곳에 백련이 피어나서 지은 절이라고 한다. 무주 구천동의 14개 사찰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어 가치가 더욱 높다. 매월당의 부도와 함께 고승들을 배출한 유명한 고찰이다. 못봉 구렁이 전설은 백련사 고승의 담력담이자 동물 보은담이다. 설화의 내용은 세 단락으로 나뉜다.
첫째는, 백련사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승려의 실종 사건이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 이상한 소리가 나면 여러 명의 승려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여보시오, 누구 좀 이리 와 주시오.”라는 소리였다. 해가 지날수록 그 소리는 약해졌지만, 스님들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소리가 들리면 스님들을 보내서 그 정체를 파악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백련사의 큰 스님이 드디어 자신이 직접 그 소리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나섰다. 큰 스님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서 보니 구렁이가 있었다. 그 구렁이는 제자동의 중화사 수좌였는데 전생의 업보를 갚느라 구렁이가 된 것이었다. 구렁이는 큰 스님에게 자신을 위해 제를 올려 주기를 간청하였다. 큰 스님은 구렁이의 소원을 들어주어 정성껏 제를 지내 주었다.
둘째는, 백련사의 화재 사건이다. 구렁이를 위해 천도제를 올리고 난 뒤에 백련사와 중화사가 동시에 화재로 불타버렸다. 절을 다시 세우려고 했으나 작은 시줏돈으로는 해결이 나지 않았다. 이에 큰 스님은 평소 인연이 있던 명나라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중국으로 들어갔다.
셋째는, 구렁이의 보은이다. 큰 스님이 명나라로 갔을 때, 마침 명나라 황실에서는 공주의 병을 고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공주가 태어나자마자 말도 못하고 오른 손을 꼭 쥔 채 손가락을 펴지 못하는 것이었다. 명나라 황제는 점점 쇠약해진 공주를 절에 보내 요양을 시켰다. 이 무렵 백련사 큰 스님이 이 절에 찾아왔다. 절에 들어가려고 하자 병사들이 막아서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병사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공주가 지나가다 큰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님’을 부르며 쥐었던 손을 폈는데 거기에는 ‘해동 조선국 덕유산 제자동 선승 후신(海東朝鮮國德遊山帝子洞禪僧後身)’이라고 쓰여 있었다. 못봉의 구렁이가 공주로 환생하여 큰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명나라 황제가 자신의 딸을 치유해 준 큰 스님에게 백련사 재건 비용을 내려 주어 옛 모습 그대로 재건할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의 주요 모티프는 ‘구렁이 환생’, ‘고승 이적’, ‘동물 보은[사찰 재건]’ 등이다. 백련사는 무주 구천동 33경에 속하는 유일한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 때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고찰이다.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는 덕유산 해발 900m에 자리 잡은 백련사에서 벌어진 신성한 이적담(異蹟談)이다. 사람으로 환생한 구렁이 이야기는 한국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다. 예로부터 구렁이는 조상을 상징하거나 원혼이 환생한 것으로 본다. 허물을 벗는다는 점에서 불사, 재생, 영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도 구렁이의 재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설화 속에서 구렁이의 역할은 보은을 하거나 징벌의 대상이다. 「백련사와 못봉의 구렁이」는 전형적인 보은담이다. 구렁이의 전생이 제자동(帝子洞)의 중화사 수좌였고, 후생이 명나라 공주였다는 사실에서는 백련사의 영험함이 중국에서도 증명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제자동은 『전북 전래 지명 총람』에 의하면 ‘재덕유중대(在德裕中臺)’라고 나와 있는데, 한자의 의미상 중국 황제의 딸로 태어난 수좌승과의 인연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백련사와 구렁이 인연담은 불교 연기설에 기초를 두고 있고, 동시에 무주 구천동의 최고 사찰인 백련사의 신성한 내력을 설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