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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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영어공식명칭 | Buddhist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적상면 산성로 1050[괴목리 1602]|설천면 백련사길 580[삼공리 936-1]|양지길 92-38[소천리 1224]|구천동1로 111[삼공리 418-31]|무풍면 증산로 211-24[증산리 287]|무주읍 향한로 27-7[읍내리 720]|무주읍 북고사길 67[읍내리 52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277년 - 안국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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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위치 | 원통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 |
사찰 위치 | 안국사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괴목리 1602] |
사찰 위치 | 백련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삼공리 936-1] |
사찰 위치 | 만복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로 211-24[증산리 287] |
사찰 위치 | 향산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향한로 27-7[읍내리 720] |
사찰 위치 | 관음사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양지길 92-38[소천리 1224] |
사찰 위치 | 북고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북고사길 67[읍내리 520] |
사찰 위치 | 인월암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184-49[삼공리 869]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하며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삼국 및 신라 시대 무주 사찰]
현재까지의 구전이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무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창건 연대를 가진 사찰(寺刹)은 백련사(白蓮寺)이다. 즉 신라 신문왕(神文王)[681~692] 때 백련 선사(白蓮禪師)가 숨어 살던 곳에 백련암을 창건하였다는 내용과 신라 시대인 830년(흥덕왕 5) 무염 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였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다. 또한 원통사(圓通寺)는 1698년(숙종 24)의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 신라 시대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확한 근거가 제시된 것은 아니다.
[고려 시대 무주 사찰]
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불교 현황을 전하는 자료가 없어 그 현황을 알 수 없다. 다만 『적성지(赤城誌)』의 적상산 안국사(赤裳山安國寺記)에 의하면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시대인 1277년(충렬왕 3)에 승려 월인(月印)이 창건한 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만년 대계를 위하여 승려 무학에게 명하여 복지인 적상산(赤裳山)에 성을 쌓고 절을 짓게 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경월사(慶月寺)’로도 불렸던 북고사(北固寺)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사찰로 추정된다. 현재 북고사에는 건립 시기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로 판단되는 북고사 삼층 석탑(北固寺三層石塔)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무주 사찰]
조선 중기 이후에 각종 지리지나 기록들에서 나타나는 무주 지역의 사찰 현황을 살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는 고경사(高境寺)[상산], 불두사(佛頭寺)[백운산], 산성사(山城寺), 호국사(護國寺) 등이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60]년에는 북고사(北固寺)·구천사·원통사·청량사(淸凉寺)·상원사·중원사·호국사 등이 보인다. 가장 최근의 기록인 『적성지(赤城誌)』[1898년]에서는 안국사[적상산], 호국사·상원사·북고사·구천동사·원통사·백운암·청량사 등의 사찰 이름이 확인된다.
[근대 무주 사찰]
근대기에는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승려 백용성(白龍城)이 1918년 무주읍에 향산 선원을 세우고 도심 포교를 위해 지장회를 조직하여 포교당을 설립하고, 부인 선원으로 참선 수행을 지도하면서 불교의 근대화에 노력하였다. 그 후 선파, 전강 등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포교하여 무주 지역 불교의 중흥에 노력하였다.
[무주 지역 전통 사찰의 현황]
2017년 현재 무주 지역에는 다수의 사찰이 있다. 전통 사찰로는 북고사·백련사·안국사·원통사·향산사(香山寺) 등이 있고, 일반 사찰로는 만복사(萬福寺)·인월암(印月庵)·관음사(觀音寺)·극락사·약천사·용천사·지장사·용황사·대원정사 등을 포함하여 20여 곳이 있다. 무주 지역 다수의 사찰은 규모가 작고 각 사찰의 신도 수는 100명 내외로 영세하다. 지금도 무주의 불교는 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전통 사찰을 중심으로 무주 지역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안국사
안국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1602번지[산성로 1050] 적상산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본래의 안국사는 1989년부터 진행된 무주 양수 발전소의 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 지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1991년부터 남쪽 약 1㎞지점의 현재 자리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현재의 안국사는 1949년에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던 호국사의 옛터에 자리 잡았다. 1896년에 간행된 『적성지』의 적상산 안국사기에 의하면 안국사는 고려 시대인 1277년에 승려 월인이 창건하였고, 그 뒤 조선 초기에 이르러 무학 대사가 절을 지었다. 이후 1772년(영조 48)에 조성된 안국사 극락전 후불 탱화의 화기에도 ‘적상산 안국사’가 기록되어 있다. 1864년(고종 1)에는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를 방문한 이면광(李冕光)의 건의로 안국사를 중수하였다. 1872년(고종 9)과 1902년(고종 39)에도 개수되었다. 안국사는 현재의 자리로 옮긴 1991년에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및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및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원통사
원통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1-1번지[원통사로 676] 남덕유산 기슭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원통사 창건과 관련하여 1698년에 세워진 원통사 중창비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의 사찰 역사를 전해 주는 사료는 없다. 다만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산군 불우 조에 덕유산 원통사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후에 편찬된 『여지도서』, 『가람고(伽藍考)』, 『범우고(梵宇攷)』 등에도 사명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에 와서 원통사는 일대 중흥기를 맞게 되는데, 1698년에 탄언(坦彦)·도영(道英)·혜옥(惠玉)·일학(一學)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였다고 사적비에 전하고 있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된 이후, 의병장 김동신(金東臣)·문태서(文泰瑞)·신명선(申明善) 등의 의병 부대가 원통사를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으며, 1949년 여순 사건의 병화(兵禍)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이후 승려 황범인(黃梵仁)이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명천 마을에 임시로 법당을 마련하고 불법을 전하다가 1957년에 가람 중창에 착수하여 인법당과 산신각을 건립하였다.
3. 백련사
백련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936-1번지[백련사길 580] 덕유산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백련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구전에 의하면 신라 시대인 839년(흥덕왕 5) 백련 선사가 숨어 살던 이곳에서 백련이 솟아 나왔다고 하여 ‘백련사’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1900년(고종 37) 이하섭(李夏燮)이 부사로 있을 때 백련사를 중수하고 기념비를 남겼다. 1910년(순종 4) 일본 강점기에 구천동 일대가 일본 북해도 대학의 대학림이 되었고, 그때 백련암은 일본식 초가로 개조되는 수난을 겪었으며, 6·25 전쟁으로 선수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다. 이후 승려 현수가 부임하여 복원 불사를 시작하였고, 이후 백련암에서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진력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원통전·명부전·보제루·천왕문·일주문·범종각 등 10여 동을 복원하여 오늘과 같은 웅장한 가람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4. 북고사
북고사는 무주군 무주읍 향로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 교구 본사 금산사 말사이다. 북고사의 창건 연대를 전하는 기록은 없다. 다만 『여지도서』, 『가람고』, 『범우고』 등에 “부(府)로부터 북쪽으로 5리의 거리에 있다”라고 간단한 기록이 등장한다. 『적성지』 사찰 조에는 옛 이름은 경월사로서 당시로부터 약 700년 된 고찰”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 북고사에는 건립 시기가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판단되는 북고사 삼층 석탑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30본사 보석사의 말사에 소속되었다. 이후 1976년 주지 관주에 의해 극락전을 새롭게 건립하고 산왕당과 칠성각을 중건하였다. 1978년에 법당을 세웠다가 해체하고 1993년에 다시 지었으며, 1994년에는 극락전 건물을 이용해서 요사를 지었다. 1996년에 산왕당 앞 공터에 미륵불을 봉안하였고, 1997년에 칠성각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향산사
향산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720번지[향한로 27-7] 향산 마을 안길을 따라 약 50m 들어가 작은 동산 언덕에 자리한 사찰이다. 향산사는 선학원(禪學院)에 등록된 사찰로 『전북 불교 연감』에 따르면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중 한 명인 백용성 선사가 1918년에 창건하였다. 이후 1936년에는 백용성의 제자인 승려 선파가 중건하여 포교당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향산 선원으로 개칭되기도 하였다”라고 한다. 이후 1975년 당시 주지 해안이 대웅전을 건립하고, 현 주지 보정[김유동]이 1983년 부임하여 대웅전 산신각을 개수 및 보수하는 등 지금의 사찰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6. 관음사 등
관음사는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말사로 등록되어 있는 사찰이다. 관음사는 1938년 설천 포교당으로 출발하여 1941년 현재의 위치인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1224번지[양지길 92-38]에 건립되었다. ‘관음사’라는 사명은 1958년 승려 안심(安心)이 ‘관음사’라는 현판을 붙인 데서 비롯된다. 현재 본전인 법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집이다. 그 외 일반 사찰로는 극락사·대원정사·만복사·영화사·인월암·약천사·용천사·지장사·용황사·백련사·신불사·염불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