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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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日奉 |
영어공식명칭 | Jeon Ilb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선아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10월 20일 - 전일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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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6년 - 전일봉 삼숭 학교 교직원 자격으로 학교 운영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전일봉 무주읍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전일봉 보안법 제22조 위반으로 구속 |
추모 시기/일시 | 2001년 - 전일봉 동상 건립 |
출생지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
활동지 | 무주군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전일봉(全日奉)[1896~?]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늘갓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전치삼이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점차 신학문을 접하면서 민족 자결을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독립 정신을 갖게 되었다. 1916년 삼가리 늘갓 마을에 삼숭 학교(三崇學校)가 설립되고 교장에 전우삼이 추대되었는데, 전우삼의 조카인 전일봉이 교직원 자격으로 학교 운영을 맡았다.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삼숭 학교에는 무주를 비롯한 전라북도 진안과 장수 등지에서 많은 학생이 모여들었다.
1919년 3월 1일 고종(高宗)의 국장을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독립 선언서」를 받아 본 전일봉은 곧 동지들을 규합하여 거사 계획을 논의하였고, 동생 전기봉과 한태선, 서재순 등과 만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마련하였다. 3월 30일 밤을 이용하여 여올 교회에 보관해 두었던 태극기를 각기 나누어 가지고, 무주읍의 장날인 4월 1일 오후 2시 무렵 연설을 시작하였고, 이어서 송희중과 김재순이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뒤따라 무주 보통학교 학생 5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호응하였으나 일본 경찰이 제압하여 해산되었고 전일봉은 체포되었다. 이후 전일봉은 금산 지청으로 압송되어 보안법 제22조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대구 고등 법원에 항고하고 다시 서울 고등 법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8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2001년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무주 등나무 운동장 입구에 전일봉의 동상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