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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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時代 |
영어공식명칭 | Goryeo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하태규 |
[정의]
서기 918부터 서기 1392년까지 존속하였던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 구역]
고려시대 무주 지역은 아직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 두 고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의 무주군 안성면 지역 등 일부 지역은 현재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부리현(富利縣)과 진례현(進禮縣)의 일부였다. 부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제원군 남부와 무주군 부남면 지역 일대에 해당한다. 무주군 안성면의 경우 조선 시대 무주 지역에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면서 금산군에서 무주현(茂朱縣)으로 이속되었고, 부남면의 경우는 1895년(고종 32)에 금산군에서 무주군으로 편입되었다.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한 뒤 940년(태조 23)에 주·군·현을 정비하면서 무풍현은 신라에 이어 그대로 ‘무풍’이라고 하였고, 단천현(丹川縣)을 주계현으로 개칭하였다. 995년(성종 14)에 전국을 10도제로 개혁할 때 주계현과 무풍현은 강남도(江南道)에 소속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 전라도(全羅道)가 성립될 때 주계현과 무풍현은 진례현의 속현이 되었다. 따라서 주계현과 무풍현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속현으로 진례 현령을 통하여 다스려졌다. 그 뒤 1176년(명종 6)에는 무풍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주계를 겸무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주계현에 무풍이 병합되어 하나의 고을이 되었다가 1414년(태종 14)에 무주현으로 고쳐졌다.
한편 고려시대 특수 행정 구역으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이 있었는데, 무주 지역에는 진례현의 속소(屬所)로 안성소(安城所)와 횡천소(橫川所), 대곡소(大谷所)가 있었다. 안성소는 현재의 무주군 안성면에 해당하는 곳이며, 횡천소는 무풍면의 남부와 설천면의 남부에 해당하고, 대곡소는 부남면 장안리 일대에 해당한다. 횡천소는 철소로 알려져 있으며, 안성소와 대곡소에서 어떠한 물품이 생산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성씨와 인물]
무주 지역은 고려시대에 무풍현과 주계현, 부리현과 진례현의 일부 지역에 해당하였다.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토착 세력 현황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의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무풍 지역에 심씨(沈氏)·박씨(朴氏)·하씨(河氏)·전씨(田氏)·주씨(朱氏)·황씨(黃氏) 등 6개의 성씨, 주계 지역에 양씨(梁氏)·박씨·하씨·주씨·최씨(崔氏)·호씨(扈氏) 등 6개의 성씨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주계 지역에 강씨(姜氏)·손씨(孫氏)·이씨(李氏)·한씨(韓氏) 등 4개 성씨가 더 나타난다. 또한 후일 무주로 편입되는 지역으로 진례현의 속소였던 대곡(大谷)의 성씨로 하씨·석씨(石氏)·정씨(鄭氏)·이씨·유씨(柳氏)·안씨(安氏)·황씨·박씨 등 8개의 성씨와 속성(續姓)으로 정씨(丁氏)의 1개 성씨 등 총 9개의 성씨가 수록되어 있으며, 안성 지역의 성씨로는 최씨·송씨(宋氏)·양씨·이씨 등 4개의 성씨, 횡천 지역의 손씨·김씨(金氏) 등 2개의 성씨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부리현에는 황씨·장씨(張氏)·정씨(程氏)·배씨(裵氏)·임씨(任氏) 등 5개의 성씨가 있었는데, 그중에 현재의 무주군 부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에 어떠한 성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 무주 지역 출신의 인물로는 고려 후기 몽고 간섭기에 활동하여 벼슬이 평장사에 오른 김신(金侁) 외에 행적이 드러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역사와 문화]
무주 지역에 선사 이래 인간이 거주해 오면서 문화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으로 양국 간의 교류의 통로이자 대결의 현장으로서 역사 문화가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를 거쳐 고려에 이르는 동안 여러 개의 지방 군현으로 나뉘어 있던 무주 지방에서 역사를 반영한 문화가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 역사에 대해 자세히 전하는 바가 없고, 『무주 군지』에 고려시대에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3도의 안렴사(按廉使)가 적상산(赤裳山) 안렴대로 피란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사실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고려 말 도통사 최영(崔瑩)이 적상산의 험한 지세를 이용해 산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뜻밖의 난리에 대비하도록 요청하기도 하였다. 고려 말 전국에 왜구(倭寇)가 출몰하여 약탈을 자행하여 극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무주 지역에는 1284년(충렬왕 10) 7월에 주계, 무풍 등지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던 기록이 나타난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토착 신앙을 비롯한 지역의 각종 문화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 기록과 현존하는 유물이 거의 없어서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문화 실상을 이해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