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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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劇場 |
영어의미역 | Jinju Theater |
이칭/별칭 | 진주좌,씨네몰,프리머스 진주,프리머스 시네마 진주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웅대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연극 시설.
[개설]
1922년 11월 11일에 준공하였으며, 1923년 1월에 “진주좌(晋州座)”로 개관하였다.
[설립목적]
연극 및 영화 등을 통해 향토문화 육성과 진주시 주민들의 정서함양은 물론 집회 및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37년에 서종숙이 1923년에 개관한 당시의 구 건물을 허물고 728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새로 건립하면서 진주좌에서 ‘좌’라는 일본식 명칭을 ‘극장’으로 바꾸어 연극 공연 및 영화상영 전용극장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 예술제의 효시인 ‘영남예술제 [현 개천예술제의 전신]’의 주 무대였으나, 차츰 영화상영 전용관으로 바뀌었다.
2층 벽돌 구조였던 진주극장 건물은 6·25전쟁으로 불에 타 수차례에 걸친 개보수와 재건축을 거쳐 1996년 2월에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되었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2000년 2월 7일에 씨네몰로 명칭이 바뀌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주요사업은 연극공연 및 영화 상영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당시 도청소재지였던 부산시로의 이전 반대 집회 등 각종 집회와 강연회 등을 잠시 개최하기도 하였다.
[활동사항]
설립초기에는 진주극장에서 신파극 공연과 ‘활동사진’이라는 무성영화가 변사의 설명으로 상영되었다. 우리나라 영화의 개척자인 춘사 나운규의 작품도 상영이 되었는데, 1928년 2월에는 나운규가 중심이 된 영화순업대가 진주극장을 찾았고, 1924년에는 ‘진주소년소녀가극대회’와 1931년에는 ‘동포구제연주회’ 등이 열리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도청소재지였던 부산시 이전 반대 집회 등 경남지역 문화공연장소 외에도 강연회와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는데, 1923년 5월에 있었던 형평사 창립 축하식이 진주극장에서 열렸다.
[현황]
진주극장 자리에 2004년 12월 대형 쇼핑몰인 몰에이지1030가 들어섰고, 그 6층에 영화극장인 프리머스 진주가 있었으나, 2007년 6월 휴업신고 후 폐점했다.
[의의와 평가]
설립연도로 보아 우리나라 초기극장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극장으로서 연극 공연 및 영화상영의 산실일 뿐만이 아니라 형평운동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