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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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鄭氏 |
영어음역 | Gyeongju Jeongssi |
영어의미역 | Gyeongju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세거지 | 진도군 지산면 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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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진도읍|지산면 심동 |
입향시기/연도 | 1700년대 |
성씨시조 | 지백호(智伯虎) |
입향시조 | 정효분(鄭涍分) |
[정의]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효분(鄭涍分)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개설]
정(鄭)씨는 국내 5위 성씨로 그 본관이 122본에 달한다. 중국 귀화 성을 자처하는 서산(瑞山)정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6촌장을 지낸 지백호를 시조로 단일화하고 있어서 경주 본관 정씨를 큰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동(河東), 연일(延日), 동래(東萊) 등 분파 명문 본관 정씨와는 구분한다.
[입향경위]
진도에 입향한 경주정씨는 시조로부터 58세인 문헌공파 정효분(鄭涍分)[1704~1745]이다. 본래 군내면이였던 북치(北峙)로 들어와 뒷날 정자리와 읍내로 자손이 번졌다. 이 집안에서 정승한(鄭承漢)[군수], 정중원[병원장] 등을 배출했다.
같은 무렵 석성공파 정진(鄭瑨)[1707~1796]이 1721년 신축사화를 피해 지산면 심동으로 들어온다. 정진의 숙부 정인중(鄭麟重)[1686~1721]이 노론으로 몰려 숙청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경기도 연천에 살았었다. 정진이 심동으로 들어 온 것은 그의 처가가 청주한(韓)씨인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세거현황]
경주정씨 집안은 주로 지산면 가치(加峙)를 중심으로 자손을 퍼뜨리고 염전으로 돈을 벌었다. 이 집안에서 정상호(鄭相浩)[전남농대학장], 그의 아들 정진옥(鄭晋玉)[이화여대 교육대학원장], 정공흔(鄭公炘)[제주해양대학장], 정평흔(鄭平炘)[의사], 조카 정지흔[전남농대학장], 정산관[지산우체국장], 정지택[평통의원], 정열훈[전북대 경영대학원장] 등을 배출했다.
[집성촌현황]
진도에 경주정씨는 208가구가 살고 있으며 진도의 15위 성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