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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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安縣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진안현의 통치를 담당한 지방관.
[개설]
현감이란 수령(守令)으로 총칭된 지방관의 하나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현의 규모에 관계없이 지방관은 모두 현령(縣令)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 이르러 큰 현에는 영(令)이, 작은 현에는 7품의 감무(監務)를 두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다가 모두 현감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현이라고 하더라도 현의 크기에 따라 큰 곳에는 현령[종5품]이 작은 곳에는 현감이 파견되었다. 그러니까 현감은 가장 낮은 관직의 지방관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대전회통』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시대의 현감은 138명이었다. 이 가운데 전라도에 속한 고을을 보면 무주(茂朱)[후에 도호부사로 승격], 광양(光陽), 옥과(玉果), 남평(南平), 구례(求禮), 곡성(谷城), 운봉(雲峰), 임실(任實), 장수(長水), 진안(鎭安), 동복(同福), 화순(和順), 흥양(興陽), 장성(長城)[후에 도호부사로 승격], 대정(大靜)[후에 군수로 승격], 정의(旌義)[후에 군수로 승격], 용안(龍安), 함열(咸悅), 부안(扶安), 함평(咸平), 강진(康津), 고산(高山), 태인(泰仁), 옥구(沃溝), 흥덕(興德), 정읍(井邑), 고창(高敞), 무장(茂長), 무안(務安), 해남(海南) 등이었다.
한편 1895년(고종 32)에 이르러 진안현이 진안군으로 되면서 진안의 지방관은 군수로 칭하게 된다. 군수는 종4품직이었다.
[진안 현감 재임자]
진안 현령을 지낸 사람은 『진안 읍지(鎭安邑誌)』 또는 『진안 군지(鎭安郡誌)』에 실려 있는 선생안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온전한 것은 아니어서 누락된 자도 있는데. 현재까지 이름이 확인된 진안 현령의 수는 15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