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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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體育 |
영어음역 | Cheyuk |
영어의미역 | physical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찬식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 및 체육 활동과 관련 체육 단체.
[개설]
국민체육진흥법에 의하면 체육은 ‘운동경기와 야외 운동 등 신체 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심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를 포괄하는 광의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체육이란 용어는 하버드대학교 생리 해부학 교수로 있던 존 워런(John Warren)이 1840년 저서 『Theoretical Treatise on physical education』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20세기 초에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스포츠와 체육을 체육·스포츠로 양립시켜 교육적 의미와 경쟁적인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조깅, 경쟁이 있는 경기,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등산,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체육활동 등 다양한 신체활동 문화를 포괄하는 광의적 개념으로 같이 통용되고 있다.
또한 체육은 참여 집단 및 기능에 의하여 전문체육·학교체육·생활체육으로 분류된다. 전문체육이란 선수들이 행하는 운동경기 활동을 말하고, 생활체육은 건강과 체력 증진을 위하여 행하는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체육 활동을 일컬으며, 학교체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육활동을 가리킨다.
[변천]
1. 일제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는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지리적 여건과 인적 자원 열세 등으로 다른 지방과 달리 근대 운동경기의 도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근대 체육은 1895년(고종 32) 2월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가 발표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는 1910년 오현단(五賢壇) 자리에 제주공립농업학교가 개교되어 신학문을 가르치면서 비로소 근대 체육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제주 체육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각종 운동경기 종목들을 받아들이며 저변을 확대해나갔으며, 1920년에는 일본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주체육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제주 체육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2. 1950~1960년대
해방 이후 활력을 되찾았던 제주 체육은 4·3사건, 한국전쟁 등으로 한때 주춤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다른 시·도 체육계에게는 암흑기였지만 제주에서는 오히려 근대 스포츠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대표급 선수와 지도자들이 피난민으로 대거 제주도에 들어와 새로운 기술과 규칙을 보급해 제주체육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1950년대 들어 체육 활성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1951년 6월 15일 제주도 체육회가 창립하게 되었다. 이해 10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열린 제32회 전국체육대회에 육군 조병창 배구팀이 제주 소속으로 첫 출전했다. 이후 제주 체육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 참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기단체들도 조직되어갔다.
또한 1961년 5·16군사쿠테타 이후 체육정책이 민간 주도에서 관 주도로 바뀌면서 경기단체가 재정비되어 제주 체육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1964년에는 제주시민회관이 개장되어 도내 실내 스포츠 중흥의 계기가 되었으며, 1966년 5월에는 제1회 도민종합체육대회가 개최되어 제주 스포츠의 근간이 되고 있다. 1968년에는 제주도 체육회 규약이 개정되어 도지사를 당연직 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조직이 강화되었다.
아울러 1960년대 초반에는 제주제일중학교와 제주제일고등학교 탁구가 전국을 제패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태권도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후반에는 오현중학교와 오현고등학교 수영이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 1970년대
1970년대 접어들어 제주 체육은 시설이 확충되고 언론사와 직장 단체들의 대회 창설로 저변이 확대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1970년 5월 오라벌에 현재의 제주종합경기장의 모체가 되는 제주도 공설운동장이 갖추어졌고, 개장 기념으로 제4회 도민체전이 열렸다. 1972년 9월에는 외도수영장이 완공되어 제주 수영의 터전이 되었다.
이에 앞서 1971년에는 제주신문사가 도일주역전경주대회와 백호기 전도초등학교축구대회를 잇달아 창설했다. 아울러 이해 9월에는 제주도 교육위원회와 제주탁우회가 단축마라톤대회와 전도초등학교탁구대회를 개최했다.
1972년에는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창설되자, 예선대회로 체육 꿈나무들의 잔치인 전도스포츠소년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선수 조기발굴이 이루어졌다. 또 1972년에는 제주대학교에 체육교육과가 신설되어 체육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73년에는 제주도 교육위원회가 1교1기(1校1技) 운동강화계획을 세워 추진해갔으며, 1974년에는 제주도 체육진흥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체육진흥기금 모금운동을 전개해갔다. 경기 분야에서는 1973년 산천단에 종합사격장이 마련되면서 사격이 전국 무대에 부상하기 시작했고, 경기단체도 19개로 늘어났다.
4. 1980년대
1980년대에 접어들자 제주 체육은 전국소년체전을 유치했다가 반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가운데 19984년 5월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유치, 성장의 기틀을 만들었다. 전국소년체전 개최로 인해 우레탄 트랙의 주경기장을 비롯해 한라체육관, 실내수영장, 야구장, 정구장 등을 한데 모은 제주종합경기장이 갖추어져 제주 체육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제주체육기금 13억여 원을 모아 도내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사용했다.
1986년 9월에는 제10회 아시안게임 성화가 들어와 도 일주 봉송을 했다. 1988년 8월 27일에는 제24회 서울올림픽 성화가 국내에서 맨 처음으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경기력 면에서도 제주 체육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제13회 전국소년체전에서는 경상남도와 인천을 따돌리고 사상 처음 종합 11위를 기록하여, 만년 최하위에서 탈피했다. 여세를 몰아 1984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제65회 전국체전에서도 제주도 선수단이 성취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제주도 선수단은 이후 전국체전에서 여덟 번이나 성취상을 수상, 모두 9차례 성취상을 받았다.
이외에 1981년에 제주도 문화상 체육 부문이 제정되어 이욱형 제주도 체육회 사무국장이 첫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1983년 9월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주를 방문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제주 출신 선수로 육상 마라톤에 김원탁, 사격에 강혜자·부순희·홍영옥, 근대5종에 김명건이 참가했으며, 김원탁은 올림픽 성화 점화자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5. 199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제주 체육은 전국체육대회를 유치하여 훌륭하게 치러냄으로써 한 단계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국제대회는 물론 전국 규모의 대회를 적극 유치함으로써 스포츠 파라다이스 제주로의 발전을 기약했다.
특히 축구는 1993년에 제민일보사가 백록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를 창설,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대회를 상설 개최하게 되었다. 또 1995년에는 서귀포시가 ‘2002 한·일월드컵 축구’ 개최지로 선정되어 제주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1990년에는 김원탁이 9월 북경 아시안게임 마라톤 경기에서 당당히 우승했으며, 이해 11월에는 제주도 생활체육협의회가 발족되어 도내 생활체육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1991년 11월에는 『제주도 체육사』가 발간되었고, 12월 12일에는 대한체육회가 1998년 제79회 전국체육대회 제주 개최를 승인했다.
1993년 2월에는 제주도와 제주시가 잇달아 육상 경기부와 수영 경기부를 창단했고, 인천제철 양궁부가 제주 연고 팀으로 등록하는 등 제주 체육도 실업 선수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1994년 8월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인 부순희가 제46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여자 스포츠권총 개인전에서 우승,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해 8월에는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제2회 한·중·일주니어종합경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1995년 10월과 11월에는 도내 골프장에서 LPGA투어삼성챔피언십골프대회와 제5회 조니워커인터내셔날클럽선수권대회 등 국제 골프대회가 연속으로 열려 제주가 국제 골프의 무대로 부상했다.
제주에서 제79회 전국체전이 열렸던 1998년 6월에는 체육기금을 포함한 예산 54억 원이 소요된 제주도체육회관이 개관되어 제주 체육의 터전이 되었다. 1998년 9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열린 제79회 전국체전에선 제주도 선수단은 119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2만 6,469점을 얻어 종합 14위를 마크하며 성취율 1위상과 모범선수단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제28회 전국소년체전이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도내 일원에서 열린 것을 비롯해 스포츠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들이 전개되었다. 이해 6월에는 제주도 스포츠산업 육성을 위한 강연회 개최와 함께, 2001년 제15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2002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02년에는 1998년 제79회 전국체전 제주 개최 후 4년 만에 다시 제83회 전국체전을 제주에서 개최했으며, 이듬해 1999년 제32회 전국소년체전을 개최하였다. 이러한 국제 및 전국 대회의 활발한 개최로 제주는 스포츠의 파라다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21세기 체육·스포츠는 국경과 이념, 민족을 초월하여 지구촌 시대의 공동문화가 되었으며, 지역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체육의 가치 기준도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며, 국민 복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때문에 국위와 도위의 선양은 물론, 지역 주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지역 주민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각종 스포츠 이벤트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 등의 경제적 이유로 인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제주 체육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상당한 수준의 스포츠 인프라를 확보해가면서 체육·스포츠의 선진지로 발돋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