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23 |
---|---|
한자 | 李益泰 |
영어음역 | Yi Iktae |
이칭/별칭 | 대유(大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소정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유(大裕). 아버지는 이돈형(李惇亨)이다.
[활동사항]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74년(현종 15) 5월 전라북도 용안현감에 부임하여 1675년(숙종 1) 12월 사임하였다. 1694년(숙종 20) 이기하(李基夏)[1646~1718]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696년(숙종 22) 9월에 물러났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694년에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연무정(演武亭)과 유사시 제주목사가 제주성 방어를 총 지휘하였던 운주당(運籌堂)을 중창하였다. 또한 선조의 어필(御筆)을 개간하여 모든 관청의 관문에 액자로 만들어 게시하였다.
제주성에 한학(漢學)·왜학(倭學)의 역생(譯生) 등의 호적을 보관하는 삼학청(三學廳)을 창건하였으며, 1695년(숙종 24) 봄에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귤림서원(橘林書院)에 배향하였다. 귤림서원은 1682년(숙종 8) 신경윤(愼景尹)[1624~?] 제주목사가 개원한 이래 김정(金淨)[1486~1521]·송인수(宋麟壽)[1487~1547]·김상헌(金尙憲)[1570~1652]·정온(鄭蘊)[1569~1641]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저술과 작품]
『지영록(知瀛錄)』과 「연무정중수기(演武亭重修記)」가 있는데, 모두 제주목사 재임 중에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