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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435
한자 五賢
영어음역 Ohye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전

[정의]

조선 시대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제주의 다섯 명의 현인(賢人).

[개설]

서원은 사학(私學)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면서도 각 지방 군현의 향청과 더불어 향촌 사림의 집결소로서 정치·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귤림서원은 문묘 종사였던 충암묘와 인재 양성을 위해 설치되었던 장수당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귤림서원김정·송인수·김상헌·정온·송시열 이렇게 다섯 명의 유현이 배향되었다. 김정이 1578년에 처음 배향되고, 1695년에 끝으로 송시열이 배향된 것을 보면 그 기간이 대략 100여 년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배향을 통해 제주인들의 교육적 의욕과 동기를 유발하고, 교육 활동을 조정했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교육 지도성의 모범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귤림서원에 배향된 오현은 제주 교육사의 구체적 매개체임에 틀림없다.

[오현의 구성]

오현 가운데 김정정온 그리고 송시열은 유배인으로서, 김상헌은 안무어사로, 송인수는 목사로 각기 제주도에 내려왔다. 이들은 각기 상이한 사회·역사적 위상 속에서도 몇 가지 점에서 상호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제주도에 끼친 교육적 영향이란 시혜적 차원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조선조 교육 사상의 정당한 질서인 도통(道統)과의 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당대를 계승하는 시대정신의 문맥을 직간접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관련성이 있다.

즉, 김상헌송시열은 도통의 혁심 세력으로 조선조 교육 사상을 발전적으로 주도하였던 기호 계열의 큰 스승이다. 김정이나 송인수, 정온은 영남 계열의 학자들과 사제 혹은 종유 관계를 통해 성리학의 도통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김상헌정온이 활동하던 선조대는 명·청 교체의 격변기로 이러한 정세의 급변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리학적 도통이 무너지는 것인 만큼 주나라를 높이는 대의가 절규되었고, 그런 명분을 통하여 오랑캐의 침략에 항거하는 민족의 저항이 척화의 이름으로 강조되었다. 김상헌정온 또한 이 점에서 상호 관련이 있다.

김정은 충암묘를 만들면서 배향되었던 인물이고, 1669년(현종 10)에는 김상헌정온이 배향되었다. 1678년(숙종 4)에는 제주 목사를 지낸 송인수가 배향되었으며, 1695년(숙종 21)에는 제주 유학 김성우 등의 건의에 따라 제주에 유배되었던 송시열이 배향되었다.

[귤림서원의 변천]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귤림서원이 철폐되면서 여기에 배향되었던 오현에 대한 제사도 일시 중지되었다. 그러나 제주 유림들의 건의에 의하여 1892년(고종 29)에 오현에 대한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 마련되면서 오현단이라 불리게 되었다. 귤림서원이 자리했던 곳이 제주도민들에게 귤림서원 터로서보다는 오현단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김정이 유배인인가요? 제주 목사로 계시다가 순직하신 분 아닌가요.?
  • 답변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의 '김정' 항목의 내용을 참조하시면 궁금증이 해소될 듯합니다.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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