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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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曦閣 |
영어음역 | Yeonhuigak |
영어의미역 | Yeonhuigak Pavilion |
이칭/별칭 | 상아동헌(上衙東軒)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정청(政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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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개설]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변천]
이원조 제주목사의 「연희각기(延曦閣記)」에 의하면, “연희각은 예전에 기문이 없어서 건치(建置) 년대를 상세히 알 수가 없었다. 현판도 누가 명명하고 누가 쓴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건물은 겹처마에 깊숙한 지붕으로 좌대 위에 높게 지어져 있다. 그 이름을 연희라고 한 것은 외신(外臣)이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정성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탐라지(耽羅誌)』를 살펴보면 심연(沈演)의 시가 부기(附記)되어 있고, 당시 제주목사의 겸직(兼職)이었던 절제사가 방어사로 바뀐 것으로 보아 연희각도 이때 건립되었거나 그 이전에 건립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제주목사의 겸직은 1642년(인조 20)에 다시 절제사로 바뀌었다가 1713년(숙종 39)부터 다시 방어사로 변경되었다. 1884년(고종 21)에 연희각을 제주목사 홍규(洪圭)가 중수(重修)하였다.
[현황]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1단계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연희각 본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2고주 5량 구조, 공포는 무출목 이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복원되었다. 면적은 136.63㎡(41.33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