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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72
한자 沈遠澤
영어음역 Sim Wontae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대표관직 제주목사

[정의]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활동사항]

1886년(고종 23) 5월, 홍규(洪圭)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88년(고종 25) 7월까지 재임하였다. 1886년 6월에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여 수 만 명이 죽었고, 7월에는 폭우가 쏟아져 민가와 분묘가 떠내려가고 남수구(南水口) 홍문이 쓰러져 개건하였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87년(고종 24) 5월 제주목의 엄사인(淹死人: 익사자)에게 휼전(恤錢)을 지급하였는데, 이는 감귤 진상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하여 어부들이 익사한 내용을 제주목사 심원택이 조정에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1887년 8월 제주의 공마(貢馬)를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가파도에서 전복을 따던 일본 어선 6척이 모슬포에 상륙하여 마을로 들어가 닭과 돼지를 약탈하고 칼을 뽑아 집주인 이만송(李晩松)을 죽이고 김성만(金成滿), 정종무(鄭宗武), 이흥복(李興福) 등을 구타하였다.

또한 일본 선원 40여 명이 모슬포 기찰장(譏察長) 문재욱(文才旭)을 위협하여 억지로 화의하는 증표를 바치게 하고 가파도로 돌아갔다. 제주목사 심원택은 왜구의 노략질을 조정에 보고하였고, 조정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하여금 일본 공사와 담판을 벌이게 하였다.

[저술 및 작품]

글씨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방선문(訪仙門)의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890년(고종 27) 5월 목사심원택흥학비(牧使沈遠澤興學碑)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제주향교에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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