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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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夫丙準 |
영어음역 | Bu Byeongjun |
이칭/별칭 | 백도,부건(夫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603[북촌9길 13-4]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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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603[북촌9길 13-4] |
성별 | 남 |
생년 | 1906년(고종 43) |
몰년 | 1952년 |
본관 | 제주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제주. 호는 백도. 일명 부건(夫鍵)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한학자 부정규(夫正奎)이며 부인은 한월계(韓月桂)이다. 동생은 항일운동가 부기준(夫己準)이다.
[활동사항]
11세 때 조기 결혼하였으나 신식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전문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니혼대학 재학 중 민족주의에 눈을 떴고 1년 후 서울로 돌아왔다. 1928년 3월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중앙학교의 야체이카(사회주의 운동의 세포 조직)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청년총동맹이 파견한 진상 조사위원이 되어 현지에서 동맹 휴학을 지도하다가 체포되었고,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 면소 판결로 석방되었다. 1933년 2월 상순 김일준(金日準)의 권유로 신좌면 혁명적 농민조합 준비위윈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여 김일준이 책임자가 되고 부병준은 북촌, 구좌면의 동복, 김녕, 월정 지구를 담당하였다.
부생종(夫生鍾)과 함께 향동회(鄕同會)·민풍진흥회 결성을 주도하였고, 1933년 3월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야학을 개설하여 항일 정신을 고취시켰다. 1934년 10월 혁명적 적색농민조합운동이 탄로나 조직원이 검거될 때 부병준도 검거되었다. 부병준은 1937년 4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출감 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장사를 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제주문화협회 재일교포 연락 사무를 맡았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