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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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希洙恤民善政碑 |
영어음역 | Baek Huisu Hyulmin Seonjeong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to Baek Hui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순만 |
성격 | 휼민선정비(恤民善政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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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54년 |
관련인물 | 백희수(白希洙) |
높이 | 76㎝ |
너비 | 38.5㎝[위]|32㎝[아래]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백희수(白希洙)의 선정을 기리는 비.
[개설]
백희수는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51년(철종 2) 7월에 부임하였다가 1853년(철종 4) 12월에 교체되었다.
[건립경위]
백희수는 귤림당(橘林堂)을 개건하였으며 충암(沖庵) 김정(金淨)의 적거유허비(謫居遺墟碑)에 비각을 세웠다. 그 해 여름부터 제주도에 가물이 들어 가을이 되어도 수확을 할 수가 없었다. 백희수는 이런 실정을 장계(狀啓)로 조정에 호소하여 호남(湖南) 이전곡(移轉穀)인 별저미(別儲米)와 내탕전(內帑錢) 1,000냥을 특별히 지원받아 궁민(窮民)을 진휼하였고, 김충암적거유허비각(金冲庵謫居遺墟碑閣)을 세웠다. 백희수 휼민선정비는 흉년에 기민(飢民)을 구제한 공로를 기려 세워졌다.
[형태]
비석은 높이가 76㎝, 너비가 위쪽 38.5㎝, 아래쪽 32㎝이며, 두께는 위쪽이 11.5㎝, 아래쪽이 10㎝이다. 돌로 정사각형 좌태(左台)를 쌓고 그 위에 반반원형(半半圓形)의 돌 네 쪽을 고여 세운 산방석(山房石) 비이다.
[금석문]
앞면에는 “목사백공희수휼민선정비(牧使白公希洙恤民善政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갑인 삼월일(甲寅 三月日])”이라 새겨진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는 1854년(철종 5)의 갑인(甲寅)년 5월로 여겨진다.
[현황]
현재 큰 대석(臺石)에 석실(石室) 자리 흔적이 있어 원래는 석각(石閣)이 있었다가 중간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백희수가 제주방어사로 재임했던 기간은 1851년(철종 2) 7월부터 1853년(철종 4) 12월로 총 2년 6개월이다. 당시 제주목사의 임기는 2년 반으로 되어 있었지만 대개의 목사가 제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떠난 것에 비춰 볼 때, 백희수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