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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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汝錫 |
영어음역 | Kim Yeo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1911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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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 1911 |
성별 | 남 |
생년 | 1891년(고종 28) |
몰년 | 1961년 |
본관 | 김해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김여석은 서당 훈장으로서, 1910년 한일병합 때 제주도 유림이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기로금(耆老金)을 받은 것을 보고 노쇠한 유림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민족 의식을 담은 한문 교육을 실시해왔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여석은 저지리 서당 훈장 박세현(朴世賢), 낙천리 서당 훈장 조무빈(趙武彬), 신촌리 서당 훈장 신계선(愼啓善) 등과 거사하기로 계획하였다.
거사 전에 항일 의거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告祀)를 지내고, 전 도민의 궐기를 촉구하기 위해 일본을 타도해야 한다는 격문을 작성하였다. 이 격문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붙이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19년 10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정사법(政事法) 위반으로 김여석·박세현은 징역 3년형, 조무빈·신계선은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