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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10
한자 南鍾三
영어음역 Nam Jongsam
이칭/별칭 증오(曾五),연파(煙波),중재(重齋),요한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38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묘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성격 종교인|순교자
성별
대표 경력 승지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가계]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증조할아버지는 남규로(南奎老)이며, 할아버지는 남리우(南履佑)이고, 아버지는 남탄교(南坦敎)이다. 백부인 남상교(南相敎)[아우구스티노]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이세관(李世瓘)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며, 부인은 신행권(申行權)의 딸 고령 신씨(高靈申氏)와 이석회(李錫會)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남종삼(南鍾三)[1817~1866]은 1838년(헌종 4)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영해현감(寧海縣監)을 거쳐 철종 때에는 승정원 승지(承旨)가 되었다. 스스로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입교하여 베르뇌(Berneux) 주교를 자기 집에 숨겨 주는 등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고종 초기 베르뇌와 다블뤼(Daveluy) 등 선교사의 힘을 빌려 영국·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침을 저지해야 한다는 방아책(防俄策)을 흥선대원군에게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1866년(고종 3) 천주교 박해령을 내렸다. 남종삼은 이때 고양군 잔버들마을에서 체포되어 양력 3월 7일 참수형을 당하였다.

[묘소]

시신은 참수된 후 용산 왜고개에 매장되었다. 이후 1909년 명동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시복을 계기로 현재 절두산성당 지하에 옮겨 안치되었다. 또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의 의령 남씨 가족 묘소에도 순교 성인 남종삼 요한의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병인 순교자와 더불어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가, 1984년 5월 6일 103위 한국 복자가 시성되면서 성인품(聖人品)에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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