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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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金世均古家 |
영어음역 | Gimsegyun Panseo Goga |
영어의미역 | Kim Segyun of Old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72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형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5월 1일 - 제천 김세균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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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제천 김세균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723-2 |
원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 |
성격 | 가옥 |
양식 | 민도리집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한장수 |
관리자 | 한장수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세균이 살았던 가옥.
[개설]
김세균(金世均)[1812~187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공익(公翼), 호는 만재(晩齋)이다. 아버지는 서윤(庶尹) 김병문(金炳文)으로, 현감인 큰아버지 김병선(金炳先)에게 입양되었다. 1834년(순조 34)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등을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1871년(고종 8)에는 이조 판서가 되었다. 후에 강원도와 함경도의 관찰사와 수원 유수를 지냈다. 1873년 왕명으로 『기년아람(紀年兒覽)』 속편을 편집하였다. 저서로 『완염통고(琓琰通考)』가 있다.
[위치]
월악산 자락의 약간 높은 둔덕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제천시 한수면 소재지인 송계리에서 충주·수안보 방면으로 난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300m 정도 한송초중학교가 나오는데, 제천 김세균 고가는 그 옆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5호인 제천 명오리 고가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다. 원래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있던 것을 안채는 충청북도 중원군 살미면 무릉리로 이건하였고, 사랑채만 남아 있다가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제천 김세균 고가는 현재 사랑채와 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채는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에 좌측 뒤편으로 익랑 2칸 반을 달아낸 ㄱ자형 집이다. 평면은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대청[마루방], 윗방, 안방, 부엌을 배치하고, 북쪽으로 꺾어서 2칸의 온돌방을 구성하였다. 제일 북쪽 끝 방은 제례(祭禮)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이하다.
대청, 윗방, 안방의 앞쪽으로는 퇴를 달아 마루를 깔고 각 방의 앞뒤로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대청마루의 전면 창호는 4분합 들어열개로 하고 다른 삼면도 분합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건물 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잘 다듬은 사다리꼴 방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방형기둥을 세웠다. 가구 형식은 1고주 5량가이다. 본채 측면에는 중간 기둥 상부와 대량 사이에 충량을 걸고 외기도리를 짜 올려 팔작지붕 가구를 형성하고 있다.
대청의 천정은 추녀와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에 우물반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연등천정으로 하였으며, 각 방의 천정은 모두 반자 위에 종이바름으로 마감하였다. 안방과 윗방에는 툇마루에 면한 외벽의 하부에 머름을 설치하고 세살문 안쪽에 영창을 달아 2중문으로 구성하였다. 가옥의 정면에 일각 대문이 있고, 주위로 층계식 막돌담을 둘렀다. 대문 입구 우측으로는 함석지붕으로 만든 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제천 김세균 고가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반듯한 치목 솜씨와 간결한 구조, 잘 다듬어진 사각 주춧돌, 각 방문 밑에 설치한 머름, 전체적으로 은은한 느낌의 빛바랜 고색 등이 잘 어울려 당시 사대부가의 사랑채로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각 실의 꾸밈새나 구조 기법 등에서 조선 후기 반가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