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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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시가지 북쪽 4㎞ 부근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시내를 관통한 뒤 용두산 끝자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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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제천문학은 남한강 물길 천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산간 농경 문화의 기반에 대응한 제천 사람들의 민간 사고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제천문학은 여러 선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학습된 축적으로 체계를 이루었다.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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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흥(義興).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종(朴承宗)이며, 할아버지는 박문헌(朴文獻)이고, 아버지는 박경심(朴景諶)이다. 어머니는 김난언(金蘭彦)의 딸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박수검(朴守儉)[1629~1698)은 조석윤(趙錫胤)의 문인이며, 뒤에 송시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만지곡(晩知谷)[현 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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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박양한(朴良漢)과 박양우(朴良遇)의 아버지는 숙종 대의 문인 박수검(朴守儉)[1629~1698]이다. 박수검은 조석윤(趙錫胤)과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의 폐출을 보고 벼슬을 버린 뒤 제천의 임호(林湖)로 내려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박양한은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장으로 안무사에 제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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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청풍부사를 역임한 오도일의 문집.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1689년 청풍부사가 되었으며, 부사 재직 시인 1690년 청풍의 읍지인 『청풍지(淸風誌)』를 편찬했으며, 부사 집무처인 명월정(明月亭)을 세웠다. 울산의 고산서원(孤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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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 및 출판 활동의 총칭. 언론은 정치·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 수단으로 말이나 글을 통해 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의 역할을 하는 행위를, 출판은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판매·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을 각각 통칭한다. 제천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소사는 각 언론매체에서 방송, 신문,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하여 음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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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역사와 문화. 전통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과 청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지역 사회는 삼국 시대 이래 정치·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 1980년 제천시로 통합되면서 지역 사회는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면서 활동 무대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제천 지역은 강줄기를 따라 혹은 점말동굴로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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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 제천 출신의 문신 임호 박수검을 기리는 의림사(義林祠)를 중건하고 6명의 후손 및 후학이 모여 지은 6편의 한시. 1827년(순조 27) 의림지(義林池)를 즐겨 찾던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1629~1698]을 기리기 위하여 그 주변에 의림사를 창건하여 제향하였다. 이후 30년 만인 1857년(철종 8)에 의림사를 중수하였는데, 당시의 감회를 6명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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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수검(朴守儉)이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의 한가로운 정경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임호(林湖) 박수검[1629~1699]은 44세 때인 1673년(현종 14) 별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중간에 귀양을 가거나 퇴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줄곧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이 시기는 바로 사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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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수검(朴守儉)이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서 썰매 타는 모습을 그린 칠언 율시의 한시. 임호(林湖) 박수검[1629~1699]은 44세 때인 1673년(현종 14) 별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중간에 귀양을 가거나 퇴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줄곧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이 시기는 바로 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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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규를 시조로 하고 박수검의 후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의흥 박씨의 관향조인 박을규(朴乙規)의 본성은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화(禍)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春城)[현재 단양군 영춘면] 거의동(車衣洞)에 둔거하였다가 조선 태종(太宗) 때 외가(外家)의 성(姓)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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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와 그의 처. 이시진(李時振)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군수(郡守) 이대수(李大遂)이며, 그의 처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의 외손녀로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윤면(尹勉)의 딸이다. 이시진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12세 때 부친이 병석에 눕자 연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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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박수검의 문집. 박수검(朴守儉)[1629~1698]의 본관은 의흥(義興)이며,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이다. 아버지는 박경심(朴景諶)이다. 조석윤(趙錫胤)의 문인이며, 뒤에 송시열(宋時烈)을 사사하였다. 만지곡(晩知谷)[지금의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출신이다. 1812년(순조 12) 현손인 박상순(朴尙淳)·박문순(朴文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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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제천의 불교는 통일 신라 시대에 유행한 화엄종의 영향권 안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제천과 가까운 단양에 화엄 십찰 중의 하나인 비마라사가 있었다. 화엄종이 실질적으로 신라의 국교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에 제천 지역의 불교도 화엄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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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족 부락, 동족 마을, 동족 촌락, 동성 마을, 집성 마을 등이라고도 한다.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삼국 시대에서 조선 초기에도 있었을 것이나 동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마을 운영을 위한 동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