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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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汝樑感齋日記 |
영어공식명칭 | Gamjaeil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교산리 104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11월 8일 - 함양박물관에 기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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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10월 24일 - 박여량 감재일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박여량 감재일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소장처 | 함양박물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교산리 1044] |
성격 | 일기 |
저자 | 박여량 |
권책 | 1권 |
규격 | 26.1㎝[세로]|19.2㎝[가로]|3.3㎝[두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박여량의 친필 일기.
[개설]
박여량 감재일기는 박여량(朴汝樑)[1554~1611]의 후손 박호정이 2011년 11월 함양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저자]
박여량의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이다. 본관은 삼척이다. 박여량은 지금의 함양군 수동면에서 태어났다. 1600년(선조 33)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세자시강원 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1536~1623]의 대표 제자이고, 광해군의 등극 및 즉위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박여량 감재일기는 1600년에 박여량이 상경하면서 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14년 그의 문집이 간행될 때는 1608년부터 1611년까지 일기만 수록하였다.
[형태/서지]
박여량 감재일기는 모두 135장 1권의 책으로, 괘선이 없는 한지에 초서로 쓰여 있다.
[구성/내용]
박여량 감재일기는 1608년[광해군 즉위년] 음력 11월 22일부터 1610년 11월 28일까지 만 2년 동안 쓴 개인 일기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간략하게 되어 있거나 자세하게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을 박여량 감재일기에는 누구인지 이름을 정확히 밝히고 있고, 주변 상황에 대한 기록도 남겨져 있다. 또 실록에는 삭제되어 있는 상소문의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경우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혀 수록되지 않은 내용도 박여량 감재일기에 있다.
박여량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1610년 8월에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고대(孤臺) 정경운(鄭慶雲) 등과 함께 두류산[지금의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두류산일록」을 남겼다. 박여량 감재일기 속에 친필본이 남아 있으며, 많은 시문이 있어 『감수재집』을 보완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스승인 정인홍에 관한 기록, 정인홍 제자들의 상황 및 사상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도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원본은 초서(草書)로 되어 있다. 2013년에 보존처리를 하였지만 일부 유실된 부분이 있어 판독에 어려움이 많다. 박여량 감재일기는 관찬사서에 수록되지 않은 내용을 싣고 있어 기존 관찬사서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고 당시 경상우도 문인 학자들의 동향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2013년 10월 2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