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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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內里 |
영어공식명칭 | Seongna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태정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성내리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대정으로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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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대정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성내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성내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로 개편 |
성내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0.09㎢ |
가구수 | 445가구 |
인구[남/여] | 1,008명[남자 496명|여자 512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성내리(城內里)는 조선시대에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성문 안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성내리의 자연마을인 성내마을은 해남읍성(海南邑城)의 성 안쪽에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내리의 자연마을인 서성마을은 읍성의 서문과 옹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성(城)의 서쪽 혹은 성내리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성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오는 서상리, 남외리를 성내리에 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대정(大町)으로 개설되었다. 1949년 일본식 지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해남면 대정에서 해남면 성내리로 개칭하였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성내마을, 서성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성내리는 동헌을 비롯한 창고, 객사 등이 즐비하였던 관가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남읍성이 헐린 자리에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고, 옛 관아의 건물들은 일제의 관청이 되었다. 군청, 경찰서를 비롯하여 대정소학교[현 해남서초등학교], 대흥자동차주식회사[현 광주은행], 전주병원[현 해남우리신문사], 일본사원[현 YMCA], 등기소[현 부광예식장], 군청관사[현 해림식당] 등이 있었다. 현 해남군청 부군수실이 현감의 집무공간인 동헌(東軒) 자리이다.
성내마을과 서성마을은 모두 상업이 활발한 마을이다. 서성마을에는 서림공원 안에 단군전과 해남공공도서관이 있고, 성내에는 관공서와 상가가 집중되어 있다. 성내마을의 형성은 해남읍성의 축성과 연관이 있다. ‘해진군’으로 통합되었던 해남과 진도가 1437년(세종 19)에 다시 분리되었다. 당시 현재의 해남읍이 해남현의 치소(治所)가 되었으며 이때 해남읍성을 축성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성벽을 헐고 그 안에 일본인들이 입주하였으며, 일제는 당시의 서외(西外), 서상(西上)을 합하여 본정(本町)이라고 하였다. 성내마을의 입향조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서성마을은 1979년 12월 성내리에서 나누어져 형성되었는데,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서상(西上)·성외리(城外里)의 지역이었다.
[자연환경]
마을 남쪽으로 해남천이 흐르고 있다.
[현황]
성내리(城內里)는 북쪽으로 수성리, 동쪽으로 수성리, 남쪽으로 읍내리, 남동리, 서쪽으로 남외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0.09㎢이고, 성내리, 서성리의 2개 행정리에 445가구, 1,008명[남자 496명, 여자 5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성내마을의 주업은 상업이다. 해남군청과 해남서초등학교가 있다.
유물과 유적으로, 2001년 9월 11일 천연기념물 제430호로 지정된 해남 성내리 수성송이 해남군청 내에 있고, 해남읍성지(海南邑城址)가 있다. 무안박씨 열녀각(務安朴氏烈女閣)[1737], 여흥민씨 사충문(驪興閔氏四忠門)[1823], 조선시대의 어사불망비군(御使不忘碑群), 관찰사불망비군(觀察使不忘碑群), 행군수선정비군(行郡守善政碑群), 현감선정비군(縣監善政碑群), 안만승·안정준 효자 정려(安萬昇·安楨俊孝子旌閭)[1926], 해남 성내리 단군전(海南城內里檀君殿)[1920년대 추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