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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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東晩 |
영어음역 | Jeong Dongman |
이칭/별칭 | 우고(友古),졸암(拙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들로 조선 후기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 있다.
[활동사항]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었다. 직장(直長)과 주부(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현령과 군수를 지냈고 진주목사에 올랐다. 지극한 효심으로 부모를 섬겨 정효자(鄭孝子)로 불렸다. 의금부도사와 1810년(순조 10) 영유현령에 이어 재령군수, 순흥부사 등을 지냈다. 1818년(순조 18) 진주목사가 되었다.
[학문과 사상]
유가의 근본인 효심과 함께 관리로서의 몸가짐과 행동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인 인물로 평가된다. 정원용의 시문집인 『경산집(經山集)』 12권에 ‘삼사누기(三思樓記)’라 하여 정원용이 작은 묘막에 ‘삼사(三思)’라는 편액을 걸고 “권세(權勢)을 피하고, 교유(交遊)를 신중히 하며, 정기(精氣)를 기르라”는 아버지 정동만의 유지를 기록한 내용이 있다.
[묘소]
묘소는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으며, 정원용이 쓴 비문이 함께 있다.
[상훈과 추모]
1822년(순조 22) 아들 정원용이 정2품에 올라 추은의 혜택으로 통정대부에 올랐고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