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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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愈 |
영어음역 | Gwon Yu |
이칭/별칭 | 퇴보(退甫),하계(霞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인 |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퇴보(退甫), 호는 하계(霞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지 권형(權詗)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권약(權若)이며, 할아버지는 목사 권훈(權勛), 아버지는 권단(權偳)이다. 외할아버지는 정백형(鄭百亨)이다. 부인은 이행원(李行源)의 딸이다.
[활동사항]
권유(權愈)[1633~1704]는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병과 1인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사간원대사간·예문관대제학 등 요직을 맡았다. 곧 지경연사(知經筵事)에 올랐으나, 1694년 갑술옥사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유배되었다. 스스로 고문사(古文辭)를 즐기고 청빈하였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일찍이 민점(閔點)이 문형(文衡)을 추천할 때, 그와 이서우(李瑞雨) 두 사람을 놓고 얼른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명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운을 내어 재주를 시험하자, 권유가 즉석에서 시를 지어 좌중을 놀라게 하여 문형에 올랐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예문관제학 때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의 능지문(陵誌文)인 『인경왕후지(仁敬王后誌)』를 지었다. 이는 본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제진(製進)하였던 것인데, 1689년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화를 당하자 권유가 다시 개찬(改撰)한 것이다. 또한 조선 태조로부터 현종까지 역대 왕들의 글씨 모음집인 『열성어제(列聖御製)』 편찬에 참여하여 증정(證定)하였다. 문집으로 『하계집(霞溪集)』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소]
묘소는 광명시 가학동 안서초등학교 옆 군부대 안에 있다. 권유의 영정이 전해 내려오는데,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에 거주하는 종손 권처홍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