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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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丘致崑 |
영어음역 | Gu Chig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동인 |
[정의]
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증조할아버지는 구천우(丘天雨)이고, 할아버지는 구춘보(丘春甫)이며, 아버지는 구차숭(丘次崇)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윤(金贇)이다. 부인은 조후지(趙厚之)의 딸이다. 동생으로 구치강(丘致崗)을 두었다.
[활동사항]
구치곤(丘致崑)은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문과(式年文科) 정과(丁科)에 급제한 뒤 1479년(성종 10) 해주목사(海州牧使)를 지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해주목편에 따르면, 성격이 청렴간이(淸廉簡易)하고 백성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1475년(성종 6)에 사옹원첨정으로 윤대(輪對)에서 아뢰길, 절도범이 다시 죄를 지었을 때 사형에 처하는 것은 너무 무거우니 경형(黥刑)으로 완화하자고 건의한 바 있다. 1479년(성종 10)에는 영안도(永安道)의 삼봉도(三峰島) 토벌을 하기에 앞서 백성을 무마하는 데 성건(成健)과 함께 적임자로 선발되었다.
1480년(성종 11)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인재 등용과 소사제도(訴事制度) 등의 개선에 힘썼다. 1490년(성종 21) 강릉대도호부사와 충주목사, 1493년(성종 24) 장예원판사(掌隸院判事)와 이조참의를 지내고, 1494년(성종 25) 승정원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승지로서 명나라 사신 왕헌신(王獻臣)이 돌아갈 때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 왕이 병으로 전별하지 못하는 이유를 오해 없이 처리한 공으로 승정원우승지에 임명되었다.
1496년(연산군 2) 승정원좌부승지·한성부우윤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이 되어 왕이 어진 선비와 대부들을 직접 영접하여 성학(聖學)을 넓힐 것과 관작(官爵)의 범람을 경계할 것,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는 환관 김효강(金孝江) 등에게 죄줄 것을 주장하였다. 또 왕이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하여 소상재(小祥齋)·대상재(大祥齋) 등을 마련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홍치제(弘治帝)의 생일을 축하하고 귀국한 뒤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고, 1499년(연산군 5)에 다시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옛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