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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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良苽洞香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현 소재지 | 양과동 향등마을 선돌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옛 향등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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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 신앙 유적|선돌 |
크기(높이,둘레) | 55㎝[가로]|99㎝[세로]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었던 향등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개설]
향등마을은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만 트여 있다. 남쪽은 전라남도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 산너머는 덕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덕남동]이 있었다. 양과동 향등마을 선돌은 향등마을에 있던 선돌 2기 중 현재 남아 있는 1기의 선돌이다. 당산나무 두 곳과 함께 마을의 문지기 역할을 했던 곳으로 당산제 때 의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양과동 향등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회관 창고 뒷쪽에 있다.
[형태]
자연석으로 크기는 가로 55㎝, 세로 99㎝이다.
[의례]
향등마을 사람들은 선돌을 마을의 문지기로 생각하여 당산제를 모실 때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 함께 의례를 올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향등마을의 당산은 세 곳으로 할아버지 당산[팽나무], 할머니 당산[팽나무], 마을의 문지기[선돌]이다.
양과동 향등마을 당산제는 마을의 액(厄)을 막으려고 정월 14일 밤 11시부터 시작하여 12시까지 올렸다. 당산제를 올릴 때에는 부정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참여할 수 있으나 여자들은 뒤에서 구경만 한다. 제(祭)가 끝나면 참기름 종지기[종지]에 호롱불을 만들어 당산나무에 매어 놓는다. 당산제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약화되어 1960년대에 완전히 중단되었다.
[현황]
향등마을에는 원래 마을 입구와 마을 밖에 2기의 선돌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마을 입구의 선돌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오늘날 당산제는 중단되었지만, 양과동 향등마을 선돌은 과거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의례의 흔적으로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