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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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暹東 |
영어공식명칭 | Park Seomdong |
이칭/별칭 | 후암(後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바른 |
추모 시기/일시 | 1899년 - 박섬동 아들 박노두와 박노걸 후암정(後岩亭)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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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진곡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
사당|배향지 | 후암정(後岩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순천(順天) |
[정의]
조선 후기·근대 개항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박섬동(朴暹東)[?~?]의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후암(後巖)이다. 검암(黔巖) 박치도(朴致道)의 후손이며, 아들은 박노두(朴魯斗), 박노걸(朴魯傑)이다.
[활동 사항]
박섬동은 광주 진곡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가문의 학통(學統)을 이었다. 박섬동은 종선조(從先祖)인 검암 박치도의 학덕을 숭상하여 그에 버금가는 뛰어난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박섬동이 죽은 뒤 1899년에 아들 박노두와 박노걸이 박섬동이 거처하였던 곳에 후암정(後岩亭)을 건립하였다.
유학자 김문옥(金文鈺)[1901~1960]이 지은 「후암정기(後岩亭記)」에, "공이 죽은 20여 년 후에 박섬동의 두 아들 박노두, 박노걸이 공에 대한 애모(哀慕)의 생각이 간절하여 후암정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박섬동은 1879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