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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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杏岩洞- |
영어공식명칭 | Hangam-dong kiln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효우2로 20[행암동 59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12월 24일~2005년 2월 7일 - 행암동 가마터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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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5월 24일~2009년 3월 11일 - 행암동 가마터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조사 |
소재지 | 광주 행암동 가마터 - 광주광역시 남구 효우2로 20[행암동 597]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행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토기가마와 조선시대의 기왓가마·도기가마·삼가마 유적.
[위치]
행암동 가마터는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광주대학교에서 화순 칠구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해당하며, 두 줄기의 서쪽에 동서로 흐르는 노대천의 남쪽에 있다. 행암동 가마터 유적의 정면에는 지석강 상류인 노대천이 동서로 흐르고 뒷면에는 높고 낮은 산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현재 효천LH천년나무 2단지 아파트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행암동 가마터는 광주광역시 효천2지구 주택건설 사업이 시행됨에 따라 사업구역 내의 유적 훼손이 불가피하여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 12월 24일부터 2005년 2월 7일까지 지표조사와 2006년 5월 24일부터 2009년 3월 11일까지 시·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삼국시대의 토기가마와 조선시대의 기왓가마, 도기가마, 삼가마 유적이 확인되었다.
행암동 토기가마는 1지구에서 6기, 2지구에서 9기, 3지구에서 7기 등 총 22기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언덕 사면에 있으며, 모두 지하식 등요이다. 또한, 토기 가마 주변에서 가마를 보호하기 위한 가구시설, 배수시설, 채토장, 점토 저장공, 토기 제작 공방, 수비장, 건조장, 집수시설, 불씨 저장고, 주거지, 숯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소호류, 호류, 발, 손잡이가 달린 술잔, 뚜껑접시, 기대[밑이 둥근 항아리 따위의 그릇을 올려놓는 데 쓰던 받침], 파수부[손잡이 부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가마의 운영 시기는 1지구의 4~6호 가마가 5세기 중엽에 시작되어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엽까지 가장 왕성한 생산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6세기 중엽 경에 3호 가마의 백제시대 세발토기[삼족기(三足器)]나 기대, 가장 후행(後行)하는 뚜껑접시를 생산한 후 가마군이 최종적으로 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행암동 기왓가마는 5기의 가마가 2개의 군집으로 나뉘어 확인되었다. 1, 2호 가마는 조사 지역의 북서쪽 언덕 사면부에 나란히 있고, 3~5호 가마는 남동쪽 언덕 하단부에 있다. 1, 2호 가마는 요전부가 일부 유실되었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잘 남아 있는 편으로 소성실 후미에 짧은 연기 배출 시설을 만들고 가마 주변으로 하나의 구덩이를 만들어 두 가마가 동시에 사용되었다. 3~5호 가마는 1, 2호 가마와 마찬가지로 연도부뿐만 아니라 요전부까지 공유하여 사용하였다. 가마 내부에서는 연꽃무늬 수막새, 꽃무늬 암막새, 집선(集線)무늬·파도무늬 평기와, 분청사기 등이 출토되었다. 기와의 수급지는 기왓가마 주변에서 확인된 건물지로 추정되며, 가마의 고고지자기[Archeomagnetic] 분석 결과 모두 15세기 초반으로 측정되어 조선시대 전기에 생산 활동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행암동 도기가마는 기왓가마와 함께 확인되었는데 벽과 천장이 대부분 유실되고 바닥만 남아 있다. 소성실 북쪽 바닥에서 돌로 만든 건물지의 경계가 확인되어 가마 사용 후 건물지가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부에서는 항아리 아가리 부분의 토기 조각, 큰 항아리 몸체 조각, 사발 모양의 접시, 도기 밑바닥 등이 출토되었다.
행암동 삼가마는 총 4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1호와 3호는 원형, 2호는 방형, 4호는 타원형이다. 내부에서는 목탄층과 함께 기와 조각, 아궁이 틀, 발형 토기, 깬돌 등이 확인되었다.
[현황]
행암동 가마터는 광주광역시 효천2지구 주택건설 공사로 대부분 유실되었으나 일부 가마는 인근지역에 이전·매립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복원하였다. 기왓가마 3기[3~5호]와 토기가마 1기[7호]는 인근지역에 이전·매립하였고, 토기가마 8기[8~15호]는 보호 구조물을 설치하고 매립하여 유구(遺構)를 보존하였다. 또한, 토기가마 2기[3호, 5호]는 순천 고인돌 공원 야외 전시장으로 이전·복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행암동 가마터는 호남 지역에서는 유례가 없는 대단위 생산 유적으로 5~6세기의 영산강 상류 지역의 토기 생산과 유통 과정, 조선시대의 기와 생산과 수급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