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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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藥師庵 |
영어공식명칭 | Yaksaam Hermitag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60번길 89[운림동 1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최원종 |
건립 시기/일시 | 847~868년 - 인왕사 철감선사 도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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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105~1122년 - 인왕사 혜조국사 중창, 인왕사에서 약사암으로 개칭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56년 - 약사암 승려 성암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05년 - 약사암 승려 선주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80년 - 약사암 대웅전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 약사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
현 소재지 | 약사암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60번길 89[운림동 11] |
성격 | 사찰 |
창건자 | 도윤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소속 사찰.
[개설]
약사암(藥師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철감선사(澈鑑禪師) 도윤(道允)이 증심사(證心寺)를 창건하기에 앞서 건립한 사찰로, 원래 인왕사(仁王寺)였다가 고려 예종 때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중창(重創)하면서 '약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증심사의 창건 연대가 철감선사 도윤이 중국의 당나라에서 귀국한 847년(신라 문성왕 9)에서 쌍봉사(雙峯寺)에서 입적한 868년(신라 경문왕 8) 사이인 것으로 보아 약사암도 이 당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암은 증심사의 작은 암자로 창건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지리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다가 1934년에 간행된 『광주군사(光州郡史)』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창건 당시에는 원래 '인왕사'라 불리었다가 고려 예종 때 혜조국사가 중창하면서 '약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56년(조선 철종 7) 승려 성암(性庵)이 약사전(藥師殿)을 중수하였고, 1905년에는 승려 선주(善周)가 전라남도관찰사 주석면(朱錫冕)의 도움과 김기창·김은수·박태환·신명균·최상석의 시주를 받아 중건하였다. 1978년 이후 중건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80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활동 사항]
1980년 대웅전을 중건하기 위해 약사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중수기(重修記)와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다. 「중수약사전기(重修藥師殿記)」는 중수의 사실과 시기, 관련된 인물을 한지에 기록하였으며, 중수기의 끝에 쓰인 '성진조칠년병진삼월십육일(聖上阼七年丙辰三月十六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1856년에 중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약사암중건상량문(藥師庵重建上樑文)」은 「중수약사전기」 이후의 중건 사실을 알려 주는 기록으로 중건의 과정과 일시, 관련 인물 등을 한지에 기록하였으며, 말미에 쓰인 '광무구년추구월기망(光武九年秋九月旣望)'의 연호를 통해 1905년에 중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약사암은 증심사로 들어가는 오른쪽 길을 따라 600미터 정도 올라가 약사계곡 뒤쪽 분지에 새인봉을 바라보며 동서 방향을 축으로 하여 자리하고 있다. 1980년에 건립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광주광역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통일신라 때 조성된 광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光州藥師庵石造如來坐像)이 안치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조여래좌상과 동일한 시대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운림당(雲林堂)은 대웅전 뒤에 있는데, 주지가 기거하는 승방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전체적으로 승방보다는 민가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관련 문화재]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광주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이 있으며, 약사암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