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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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獅月山|獅越山|四月山|沙月山 |
영어공식명칭 | Sawolsan Mountain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현창 |
전구간 | 사월산 -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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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사월산 -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
성격 | 산 |
높이 | 101.6m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에 있는 산.
[명칭 유래]
『대동지지』[1864]에는 “극락진(極樂津)을 옛날에는 벽진(碧津)이라 불렀다. 서쪽으로 30리[12㎞]에 있으며, 겨울에는 다리를 놓는다.”는 기록이 있어 벽진이 극락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96년 오횡묵 지도군수가 광주부로 출장 중에 건넌 벽진리는 서창리 아래 황룡강과 영산강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는 극락진을 일컫는 말이다.
『1:50000 지형도』-광주[1918], 『광주지』[1964]에는 사월산(四月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1919]에는 사월산(沙月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월(山月)’이 변하여 사월이 된 듯하다. 이 외에 무등산 사자가 건너와 살았다고 하여 ‘사월산(獅越山)’으로 불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사월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 부른다.
[자연환경]
『광주지』[1964]에 사월산은 서쪽 20리[8㎞]에 있는데, 금당산의 한 줄기가 화방산이고 다른 한 줄기가 사월산이라 하였다. 사월산은 무등산 남서쪽에서 흘러온 능선이 금당산에서 북서쪽 황새봉으로 내려서다가 서쪽 개금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북쪽에서 솟아오른 두 봉우리 중 영산강에 임하여 있는 산이다. 서쪽으로 경전선과 영산강이 있고 서석평야가 펼쳐진다. 사월산의 형세는 북쪽은 가파르고 남쪽은 완만하다.
[관련 역사적 사실]
고려시대에는 사월산 아래에 고려시대에는 벽진부곡이 있었다. 사월산 남쪽에 있는 벽진(碧津)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왔었고, 나루[벽진나루]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사월산 모퉁이를 비석거리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육로의 주요 길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월산 북쪽 월암마을 뒤쪽에 터널을 파서 탄약고를 만들었다. 또한 공군 탄약고가 있던 자리에는 포로수용소가 세워졌는데, 1952년 거제도 수용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 후 유엔군이 포로들을 전국으로 분산시켜 수용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북한군 포로들이 사월산 인근으로 이송되었다.
[현황]
사월산은 국도 제22호선인 상무대로의 극락교와 극락철교가 교차하는 제2순환로 서창나들목 교차점의 남동쪽에 자리한다. 사월산 북서쪽은 극락교와 상무대로를 중심으로 한 교통의 요지이다. 사월산 남쪽에는 벽진마을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회재 박광옥(朴光玉)[1526~1593]을 제향한 의열사(義烈祠)가 있다.